지난 추석 연휴 한국에는 느닷없이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기온이 37도까지 올라 폭염주의보도 아닌 폭염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가을을 만끽하며 모임과 나들이를 즐기는 것은 고사하고 더위부터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온열 질환이 염려되어 성묘는 취소되었지만 야외 수영장이 붐볐습니다.
알록달록 송편과 명절 음식을 차려놓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담소를 나누는 대신 주륵주륵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기후위기가 이 정도로 심각한 거였구나.’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무더위를 피해 추석에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 인파를 보니 ‘인생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정해진 때가 있다는 말도 추석에 닥친 폭염으로 뒤죽박죽이 된 계절 앞에서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래도 사계절은 버텨주리라 믿었습니다. 이제 계절 마저 흔들리다니, 위태로운 마음이 듭니다. 포근한 봄, 화끈한 여름, 선선한 가을과 소복소복 눈 내리는 정겨운 겨울은 ‘그게 언제였더라?’ 흐릿한 기억이 되어갑니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더워서 봄꽃 축제는 취소되고 춘하추동에 맞춰 옷장 정리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귀찮은 옷장 정리를 안 해서 편하다고 넘어가자니 뭔가 중요한 것을 영영 잃어가는 헛헛함이 몰려옵니다.
자연의 계절이 우리 삶을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갈수록 줄어드는 제철 먹거리, 사계절 차이가 희미해지는 옷장처럼, 인생의 계절들도 우리의 당연한 기대와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언 땅이 녹고 새순이 돋는 봄날처럼 막혔던 일이 봄눈 녹듯 풀리기를 바랐지만 설상가상 악화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한여름 태양처럼 뜨겁게 살고 싶지만 현실 속 내 일상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스산할 때가 있습니다. 가을을 맞은 비옥한 영토의 지주처럼 풍성한 수확을 예상했다 초라한 결과를 손에 쥐고 망연자실하는 일도 생깁니다. 추운 겨울밤 벽난로처럼 아늑한 관계를 원했지만 막상 부대끼는 상대와는 가슴 시리게 외로운 사이로 지낼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며 도전할수록 건강을 유지한다고 들었습니다. 내년 추석에도 열대야를 땀흘려 헤치며 달맞이를 하게 될지 상상에 맡길 뿐이지만, 한가위에 물놀이하는 돌발상황을 파도타듯 유쾌하게 넘어갈 유연함을 기른다면 100세로 가는 길이 아득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희망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칼/럼/소/개
케세이 퍼시픽 항공 (Cathay Pacific Airways) 근무 이후, 전문 코칭과 생채식 셰프 (Raw Food Chef & Health Educator) 자격을 취득한 라이프 코치 베로니카의 힐링 메시지를 전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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