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슬러 힘껏 솟아올랐다가 땅으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분수의 물줄기는 청량하고 상쾌한 느낌과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분수(fountain)의 어원은 자연의 ‘샘’을 뜻하는 라틴어 ‘fons’에서 유래했는데, 인공 분수가 만들어지면서 그 물줄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구조나 장소를 나타내는 지금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분수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물 공급원이었고,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는 주변에 조각상이나 건축물을 세워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그래서인지 분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문학 등의 예술 작품에서 항상 ‘샘’이 솟아오르는 신비롭고 은유적인 의미로 자주 언급되었다.
이러한 분수에서의 영감은 시각 예술에서도 몇 가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공장에서 생산된 소변기에 ‘R.Mutt, 1917'이라는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개념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뒤샹은 도기로 만들어진 소변기 뒤판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본래의 기능을 없애버리고 ‘Fountain’이라는 제목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점을 뒤집고자 했다. 예술과는 아무 상관이 없던 기성품이 작가의 손과 영감을 거쳐 하나의 미술작품이 된 것이다.
한편,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분수’를 홍콩 타이콴 컨템포러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 1941-)의 전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미국 현대미술 작가인 나우먼은 1960년대부터 조각,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품을 통해 혁신적이고 도발적인 작가로 불리었다. 그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고, 2009년에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 대표 작가로 참여하여 최우수 국가 참여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번 타이콴 전시 중간쯤 <분수로서의 자화상(Self-Portrait as a Fountain)>을 표지로 한 도서와 조금 괴기하고 특이한 분수, <세 개의 머리 분수, 줄리엣, 앤드류, 린데(3 Heads Fountain, Juliet, Andrew, Rinde)>를 만나볼 수 있다[그림1/2].
이 전시는 “진정한 예술가는 신비스러운 진실을 밝혀 세상을 돕는다(The True Artist Helps the World by Revealing Mystic Truths).”라는 입구의 네온사인으로 시작한다[그림3]. 이 작품은 한 문장을 네온 튜브로 작성한 그의 초기 네온 작품이다. 그의 전시는 사실 감상하는 데 조금 불편하고 인내가 필요할 수 있는 소리와 비디오 작품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나우먼이 예술가로서의 자신 그리고 예술가의 역할 등을 탐구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상징적인 네온 작품은 예술가로서 내가 왜 존재하는가에 관해서 묻고,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작품들을 접하는 경험에서 만나는 그의 첫 번째 대답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또, “진정한 예술가는 놀랍도록 빛나는 분수(The True Artist is an Amazing Luminous Fountain)”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우먼은 자신을 물을 뿜어내는 분수로 표현한 사진 이미지를 발표했다. 자신이 선언한 문구를 유쾌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은 뒤샹이 작가가 선택한 모든 물건이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나우먼은 예술가로서 나의 모든 행동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2005년 작의 분수에서는 분수의 역할을 에폭시 수지로 본 떠 만든 동료들의 두상에 맡겼다. 이 작품에서는 하나의 샘이 동료들의 머리를 통해 분출되고 바닥에 모였다가 다시 들어가 재생되는 반복을 잘 보여준다. 사실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는 쉽지는 않다. 나우먼 역시 ‘자신이 스튜디오에 홀로 남았을 때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자신의 역할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그의 결론은 내가 나를 예술가로 정의했기 때문에 작업실에서 하는 모든 행동이 예술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우먼은 그치지 않는 빛나는 영감의 원천이 흐르는 분수 작품들을 통해 예술가가 일관적인 생각, 그러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간으로 확장하는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wjyart).
PLACE 타이콴 컨템포러리(JC 컨템포러리 갤러리)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물, 타이콴 내부에 위치한 갤러리로 스위스 건축사인 헤르조그 앤 드뫼롱(Herzog & de Meuron)이 디자인했다. 전시회는 주로 1층과 3층에서 이루어지며 2층에는 전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예술 도서(Artists’ Book Library)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칼럼 소개 : 홍콩에서는 가장 큰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이 열리고, 세계적인 옥션 회사들이 일 년 내내 프리뷰와 전시를 개최하며, 대형 갤러리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쉴 틈 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홍콩에는 M+ 미술관과 홍콩고궁문화박물관 등이 위치한 시주룽문화지구, 시대에 상관없이 내실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HKMoA와 시각예술 복합문화공간인 K11Musea, PMQ, 타이콴 헤리티지, 전 세계의 유명 및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홍콩은 동서양의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미술 도시이다. [미술도시, 홍콩] 칼럼은 미술교육자 원정연이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전하는 미술, 시각문화, 작가, 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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