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풍경과 계절 속에서 꽃이 피어나고 지는 것을 보면서 또 그만큼의 시간을 느끼며 살아간다. 꽃이 떨어져 져버리는 슬픔에도 불구하고 꽃이 피길 기대하는 것처럼 그래도 꽃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아마도 기쁨, 화사함, 향기로움, 아름다움과 같은 긍정적인 언어일 것이다. 미술에서도 꽃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작가들의 영감과 관심은 당연하였고, 그 결과, 전 세계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꽃과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5월과 6월 홍콩 가고시안 갤러리에서도 3월부터 진행된 《ANDY WARHOL’S LONG SHADOW》 전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꽃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갤러리 한쪽 벽면,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꽃과 문화기업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의 창립자이자 ‘슈퍼플랫(Superflat)’이라는 개념을 통해 서구에서 먼저 상업적인 성공과 명성을 동시에 이뤄낸 일본 현대미술의 대가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1962-)의 꽃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을 통해 꽃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과 동시에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워홀의 꽃은 풀을 배경으로 선명한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하여 워홀의 또 하나의 상징적인 팝 이미지가 되었다. 워홀의 꽃은 어떤 세부묘사나 깊이 없이 애니메이션이나 광고 이미지처럼 평평하게 만들어졌다. 꽃은 화사한 가운데 행복의 이미지로 읽히지만, 또 다른 한편, 색상의 대조에서 오는 약간의 불길한 기운과 함께 연약한 생명력으로 곧 져버릴 꽃의 덧없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라카미의 꽃 그림은 착한 눈을 하고 활짝 웃고 있는 귀여운 꽃들이 가득 차 있다. 이 아이들은 예쁘게 활짝 웃는 꽃송이들로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길거리 상점에서도 열쇠고리 같은 각종 모방 상품까지로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 가볍고 유쾌해 보이는 꽃들은 일본의 보수적인 미술계를 비판하며 뉴욕에 도착한 일본화를 전공한 무라카미가 서구 미술계를 공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탄생한 캐릭터 중 하나이다.
무라카미는 일본의 전통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캐릭터와 작품세계를 만들었다. 특히, 국제적인 성공을 위해 2차원의 평면성과 대담한 색상을 특성으로 하는 우키요에와 같은 일본 전통화가 서양미술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참조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슈퍼플랫’한 일본의 대표적인 서브컬처 산업인 만화의 스타일과 오타쿠 문화를 반영하여 미술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이 과정에서 무라카미는 동시대 미술의 깊이 없음, 즉 평평한 취향을 비판함과 동시에 이용하며 워홀이 그랬던 것처럼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무라카미는 16세기의 미술평론가가 카노 에이토쿠(Kano Eitoku, 1543-1590)의 그림을 비평할 때 사용했던 모순되는 두 가지 측면을 담고 있는 용어인 ‘강하지만 예민한 감수성(kaikaikiki)’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용어는 그의 캐릭터 명과 회사명에도 사용되었다. 그는 미술시장 자체에 대한 비판까지도 상품화되는 미술시장의 특수성을 읽었고, 이를 반영하듯 캐릭터에 모순되는 여러 측면을 동시에 담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의 캐릭터에서 아이같이 귀여운 이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어른들의 허무함, 욕망, 뒤틀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읽어 낸다. 그의 꽃들 역시 일본 에도 시대에 그려졌던 요괴의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미지에서 비롯되어 귀여운 이면에 빽빽하게 들어찬 기이함과 기괴함 역시 담고 있다.
이렇게 일찍 미국으로 건너가 세상에 대한 비판과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추구한 무라카미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살펴보다 보면 작품 속 활짝 웃고 있는 가장 큰 꽃 한 송이와 다양한 분야에서 신사업을 펼치고 있는 회사 카이카이 키키의 파산을 막기 위해 아무리 힘들어도 해맑게 웃는다는 알록달록한 꽃 모자를 쓴 62세의 예술가(@takashipom)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칼럼 인스타그램@wjyart).
PLACE 가고시안 갤러리
홍콩 센트럴의 페더 빌딩에 위치한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6월 22일까지 《ANDY WARHOL’S LONG SHADOW》이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앤디 워홀뿐만 아니라 동시대와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무라카미 다카시, 장 미셸 바스키아, 리차드 프린스, 데릭 아담스, 쩡 판즈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칼럼 소개 : 홍콩에서는 가장 큰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이 열리고, 세계적인 옥션 회사들이 일 년 내내 프리뷰와 전시를 개최하며, 대형 갤러리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쉴 틈 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홍콩에는 M+ 미술관과 홍콩고궁문화박물관 등이 위치한 시주룽문화지구, 시대에 상관없이 내실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HKMoA와 시각예술 복합문화공간인 K11Musea, PMQ, 타이콴 헤리티지, 전 세계의 유명 및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홍콩은 동서양의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미술 도시이다. [미술도시, 홍콩] 칼럼은 미술교육자 원정연이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전하는 미술, 시각문화, 작가, 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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