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매체로 제작한 작품으로 전 세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양혜규(Haegue Yang, 1971-)의 <우발적 서식지(Contingent Spheres)>가 아트 바젤 홍콩 2024의 인카운터스(Encounters) 섹션에 전시되었다. 스위스 바젤과 미국 마이애미 및 홍콩에서 매해 개최되는 아트 바젤은 미술 작품 거래를 가장 큰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세계 주요 갤러리들이 선정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갤러리스(Galleries) 섹션이 아트 바젤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아트 바젤은 페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시각적 경험과 예술적 교류를 위한 흥미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아트 바젤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전시장 중앙과 통로 사이에서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인카운터스 섹션이나 작가, 큐레이터, 컬렉터, 비평가 등으로 구성된 컨버세이션스(Conversations) 섹션 등을 운영한다. 특히, ‘인카운터스’는 미술관처럼 큐레이터가 선정되어 전시홀과 복도를 활용하여 특별한 전시를 보여준다. 아트 바젤 홍콩은 2015년부터 호주 시드니 아트스페이스(Artspace)의 디렉터이자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호주관 큐레이터였던 알렉시 글래스-캔터(Alexie Glass-Kantor)가 기획을 맡아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양혜규 작가는 이번 아트바젤 홍콩에서 갤러리스 섹션 뿐만 아니라 인카운터스와 컨버세이션스에 참여했다. 인카운터스의 <우발적 서식지>는 페어장 중앙 입구 쪽에 전시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작품은 라탄을 엮어 만든 두 개의 큰 조각, 천장으로부터 공중에 매달린 늘어진 하얀 술과 그 끝에 달린 쇠방울줄, 그리고 흔들면 소리가 나는 수직의 쇠방울 동아줄로 구성되었다. 이 세 작품은 각각 <엮는 중간 유형–이면의 외계 이인조(The Randing Intermediates-Underbelly Alienage Duo>, <중간 유형–서리 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The Intermediate-Five-Legged Frosty Fecund Imoogi)>, <소리 나는 동아줄-십이각 금 반듯 엮기(Sonic Cosmic Rope-Gold Dodecagon Straight Weave)>이다.
세 작품이 종합된 <우발적 서식지>는 외계 이인조, 오발 이무기, 동아줄이라는 독특한 제목처럼,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동아줄을 한옆에 둔 혼종된 생명체들처럼 보였다. 외계 이인조와 오발 이무기는 필리핀의 전통 문양을 참조한 무늬 위에 세워졌고 라탄과 짚풀 공예 작업 방식으로 직조되었다. 큰 방울과 작은 방울을 엮어 긴 밧줄 형태로 거의 전시장 바닥까지 늘여진 소리 나는 조각은 작가가 언급하기도 했던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를 연상시킨다. 외계 이인조들에는 커다랗고 긴 손잡이 달려 있는데 그 손잡이를 돌려보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손잡이가 돌려지는 순간 외계 이인조가 성큼성큼 이동해 구원의 동아줄을 흔들고 쇠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백색 이무기가 승천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양혜규 작가는 컨버세이션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작품과 전시에 관하여 직접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는 2006년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었던 인천 폐가에서 열린 《사동 30번지》에 관하여 언급했다. 이 전시는 작가가 독일에서 활동하던 중 한국으로 와 오랜 기간 방치되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외할머니의 집에 작품들을 설치하고 전시 제목 역시 외할머니가 살던 집 주소 그대로 지었던 전시다. 전시장이 아닌 곳에 작품들을 설치하고 당시 스스로 터부시했던 것들을 시도하여 증명하려고 시도했던 것이 자신을 성장시켰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현재는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당시로써는 기대하지 않았던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았던 과거의 전시와 이번 10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와 유럽 등지에서 개최되는 개인전 《윤년(Leap Year)》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칼럼 인스타그램 @wjyart).
PLACE 아트 바젤 홍콩 2024
홍콩 컨벤션 센터(HKCEC, Hong Kong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에서 열린 아트 바젤 홍콩 2024는 지난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40여 개 국가의 242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국제갤러리, 리안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우손갤러리, PKM갤러리, 학고재갤러리, 휘슬갤러리 등 총 20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칼럼 소개 : 홍콩에서는 가장 큰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이 열리고, 세계적인 옥션 회사들이 일 년 내내 프리뷰와 전시를 개최하며, 대형 갤러리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쉴 틈 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홍콩에는 M+ 미술관과 홍콩고궁문화박물관 등이 위치한 시주룽문화지구, 시대에 상관없이 내실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HKMoA와 시각예술 복합문화공간인 K11Musea, PMQ, 타이콴 헤리티지, 전 세계의 유명 및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홍콩은 동서양의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미술 도시이다. [미술도시, 홍콩] 칼럼은 미술교육자 원정연이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전하는 미술, 시각문화, 작가, 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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