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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홍생] 풍수지리에 얽힌 홍콩 건물 이야기 위클리홍콩 2023-04-14 11:42:54

과학의 발달로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옛날보다 많이 줄었지만,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미신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요한 시험 전날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가, 밤에 휘파람을 불면 귀신이 나온다 등 여러 미신들이 있다. 서양권에도 여러 유명한 미신들이 있다. 새똥을 맞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든가, 검은 고양이 혹은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하게 여기는 미신들이 대표적이다.

 

홍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도 엘리베이터에서 숫자 4를 찾기 어렵고, 8이나 9가 들어간 휴대폰 번호나 차량번호가 인기가 많다. 매년 새해가 되면 서점에는 신년 운세 풀이 책들이 곳곳에 비치된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풍수지리가 홍콩의 가장 대표적인 미신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풍수지리가 미신이다, 과학이다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현재 다양한 학문적 접근과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홍콩의 건축학에서는 풍수지리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홍콩 성시대학(City University)은 지난 2005년 세계 최초로 건축학과 석사 과정에 풍수지리 과정을 개설했을 정도로, 풍수지리는 미신을 넘어 홍콩인들의 삶과 생활에 핵심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왼쪽에서부터 BOC 건물, Cheung Kong Centre, HSBC 건물

홍콩에서는 풍수지리 때문에 독특한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센트럴에 위치한 중국은행(BOC) 건물과 HSBC 건물에 얽힌 이야기다. 

 

뾰족한 중국은행 건물의 외관은 원래 대나무를 형상화한 디자인이지만, 풍수지리적으로 날카로운 칼날을 연상시켜 살기를 뿜어내는 형상이라고 한다. 중국은행 건물에서 뿜어내는 살기는 그 주변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행 건물의 날카로운 모서리면을 바라보던 Lippo Centre에 들어간 회사들은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재정 악화를 겪는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또 다른 모서리면을 바라보던 홍콩 관저 예빈부(礼宾府)도 살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중국은행 건물 공사 중 당시 총독이었던 Edward Youde가 베이징 출장 중 급사했고, 완공 후 재임했던 총독 Chris Patten은 심장 수술 받았다. 그래서인지, 홍콩 반환 후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었던 퉁치화(董建华)는 한 번도 그 건물에 기거한 적이 없고 외빈 접대용으로만 사용했다. 

 

중국은행 인근 홍콩 재벌 리카싱(李嘉誠)의 Cheong Kong Centre는 중국은행 건물에서 오는 나쁜 기를 차단하기 위해 유리에 반사 필름을 붙였고, 후문에 따르면 리카싱이 사용하는 화장실에는 그 살기를 꺾기 위해 작은 연못과 폭포가 설치되어 있다. 

 

결국 중국은행은 풍수사의 조언에 따라 건물 밖에 중국에서 가져온 커다란 바위와 폭포를 만들고, 주변에 식물과 나무를 심어 좋은 기를 키워 나쁜 기를 무마하는 보완 작업을 여러 차례 했다.



중국은행 인근에 있는 HSBC 건물은 중국은행 건물의 나쁜 기를 막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철저히 풍수지리적인 요인들을 반영했다. 빌딩 옥상에는 대포처럼 생긴 크레인을 설치해 포구를 중국은행에 향하도록 하여 맞대응을 했고, 바람과 기가 잘 통하도록 1층이 뻥 뚫린 필로티 구조로 건물을 지었다. 1층의 에스컬레이터를 사선으로 노출시켜, 나쁜 기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건물 위층으로 못 올라오게 했다. 또한 입구에는 번영과 부를 상징하는 청동 사자 한 쌍을 배치해 수호신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여러 유명한 풍수지리와 관련된 건물 이야기들이 있다. 회전 레스토랑으로 유명했던 완차이의 Hopewell Centre 옥상에는 사람이 수영하지 못하는 수영장이 하나 있다. 원형 긴 기둥에 실린더 모양이 담배나 양초를 연상시켜 불과 죽음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여, 부랴부랴 건물 옥상에 불을 억제할 수 있는 작은 원형 수영장을 만든 것이다. 


 

리펄스 베이의 명소인 The Repulse Bay 고급 아파트에 구멍이 뚫린 이유도 풍수지리와 연관됐다. 중국 신화에 따르면, 영물인 용은 산에 살면서 가끔 물을 마시러 물가로 날아간다. 산에서 해변으로 부는 바람이 일면 용이 산에서 물을 마시러 나간 것이라고 여겼고, 용의 움직임을 막으면 해를 불러온다는 믿음이 있다. 용의 움직임을 막지 않기 위해 건물에 ‘용문’을 뚫어놨다. 

 

홍콩 대표 놀이공원인 홍콩 디즈니랜드는 위치 선정부터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까지 풍수사의 조언을 크게 반영했다. 풍수사가 집어준 위치를 매립해 디즈니랜드 부지를 확보했고, 정문의 방향을 원위치에서 남쪽으로 12도 이전했다. 또한 재물의 기운이 깃든 곳에 ‘재물’을 의미하는 물을 이용한 놀이시설을 만들었다.

 

동서양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이 홍콩에는 이 외에도 숨겨진 풍수지리에 관련한 스토리들이 많다. 건축양식에서부터 소소한 일상생활에 깃들여 있는 홍콩의 풍수문화, 홍콩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도 신기함과 놀라움을 안겨주는 홍콩만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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