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전자 편지(e-mail)’가 종이 편지를 대체했지만,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우체국과 우편 서비스는 여전히 매우 중요한 공공 서비스다. 전자 편지의 효율성과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종이 편지만의 대체 불가능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있다. 어릴 적 한국에 살던 펜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을 적에 친구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을까 하굣길에 우편함을 열어볼 생각에 온종일 마음이 설렜다. 그 설렘을 좋아해서 지금도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직접 디자인한 크리스마스 카드에 손편지를 써서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메일 시대 속에서도 우체통은 나한테 친숙하고 고마운 존재다.
나의 꼬꼬마 시절부터 함께했던 홍콩 우체통은 늘어난 나의 나이만큼이나 그 모습도 조금씩 변해갔다. 어릴 적 흔하게 보였던 빨간색 우체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동그란 기둥 모양의 우체통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지금 가장 흔하게 보이는 우체통은 네모반듯한 초록색 우체통이다. 하지만 유심히 잘 찾아보면, 과거 영국 왕실 문장이 새겨있는 영국 식민 지배 시절의 옛날 우체통을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홍콩의 첫 우체통은 영국에서 수입되었다. 과거 영국 식민 지배 시절, 고국에 우편물을 보내려는 영국인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1878년에 철제 우체통 2개가 영국에서 홍콩으로 수입되어 홍콩에 처음 우체통이 설치됐다. 영국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당시 영국에서 사용하던 우체통과 동일한 색과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이후 1892년에 12개의 우체통이 더 수입되었고 지금의 Victoria Peak, Magazine Gap, Tsim Sha Tsui, Central, Sheung Wan 등에 설치됐다. 홍콩 우체통은 1970년대까지 영국에서 제작되어 홍콩으로 수입됐지만, 1980년대부터 현지에서 생산되었고, 한때 홍콩 전역에 1,000여 개의 빨간 우체통이 설치됐다. 홍콩 반환 이후, 홍콩 정부의 탈식민지화(de-colonise) 움직임에 따라 빨간색 우체통은 중국 우체통의 색인 초록색으로 색을 덧입혔고, 홍콩 우체국 로고를 새겨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2015년 기준, 홍콩 반환 이전에 설치된 옛날 우체통 중 59개가 여전히 제 기능을 하며 사용되고 있다. 일부 ‘퇴역’ 옛 우체통은 홍콩역사박물관이나 우정총국(중앙우체국 격) 박물관 등에 가면, 옛 영국 식민 시절의 빨간 우체통을 만날 수 있다.
옛 우체통의 재밌는 사실은 어느 영국 왕실 시대에 설치됐냐에 따라 우체통에 새겨진 왕실 문장(loyal insignia)도 달라진다. (간혹 왕실 문장이 없는 옛날 우체통도 있다) 가장 오래된 우체통에 새겨진 왕실 문장은 1901년까지 재위했던 빅토리여 여왕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현재 센트럴 우정총국 박물관과 역사박물관에 각 1개씩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조지 5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여왕 2세를 나타내는 문장도 있다. 특이하게도 스코틀랜드 왕관이 새겨진 것도 1개 있다. 역사학자들은 조지 5세와 6세의 왕실 문장이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희귀하다고 평가한다.
155년이란 긴 영국 식민 지배 역사에도 불구하고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2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홍콩은 조금씩 옛 식민 지배 당시의 모습을 지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건축, 문화, 언어 등 곳곳에서 여전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홍콩 옛 우체통도 그 중 하나다. 2015년에는 대중의 혼란을 없앤다는 이유로 옛 우체통에 새겨진 영국 왕실 문장을 금속 명판으로 가리겠다고 했지만, 거리 문화 유산의 보존과 가치를 위한 시민들의 노력에 지금까지 지켜졌다. 페이스북 페이지 ‘香港舊郵筒’에서는 홍콩 식민 시절의 옛 우체통 역사와 위치를 구글맵에 좌표로 찍어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옛 우체통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에 살아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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