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 봉준호는, 한국의 대표적인 흥행 보증 감독 중 한 명이다. 또한 그에 그치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찍는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국경과 국경이 닫히고 비행기를 타는 것이 어려워진 현재를 불과 2019년도까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06년도에 개봉된 “괴물”에서는 지금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 미군기지에서 유출된 괴물이 한강에 살며, 일반인을 공격하고 그 괴물과 맞서 싸우는 “용감한” 가족이라는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연출된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 “괴물”은 단순히 가족애를 내세우는 것보다, 정부 혹은 외국의 군대와 싸우는 소시민 그리고 환경문제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가 큰 영화였다. 2000년대의 흥행했던 한국 영화들을 둘러보면 환경문제에 대하여 말하는 한국 영화의 수는 적었으나, 마치 “괴물”이 선두를 점한 듯하였다.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인 “옥자”와 많이 닮았으나, 인간의 비양심 또는 환경파괴의 결과에 방점을 둔 것이 차이가 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가족이다. 아버지와 삼남매 그리고 아들의 딸까지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족의 조합이다. 다만 첫째 아들 강두는 현서를 자식으로 갖고 있으나 현서의 엄마는 연락 두절이다. 한강에 설치된 매점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가족들은 한강에 등장한 괴물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의 유일한 어린 자식을 잃는다. 가족의 대장인 강두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장남 강두는 딸을 홀로 키운다. 둘째 아들 남일은 운동권 출신으로 특별히 직업을 갖고 있지는 않다. 막내딸인 남주는 양궁 국가대표로 활약하나 막상 본선에 가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현서는 강두의 딸이자, 강두의 아버지인 희봉의 손녀딸이다. 이 가족들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듯하다.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가 죽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과 희생자들의 단체 장례식에서 울부짖는 가족의 모습은,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가 녹아있다. 영화는 손녀 현서의 죽음으로 인하여 흘러간다. 실제로 현서는 영화 중반부까지 죽지 않는다. 오히려 같이 한강 밑 하수구에 갇히게 된 노숙자 세진의 동생인 세주를 보호하며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강구한다. 현서의 모습은 상징적이며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강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 또한 마찬가지로 해석되지만, 결국 가족들 앞에서 죽은 현서가 보여지며 괴물의 입에서, 살아있는 세주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여성의 희생으로 탄생한 “남아”라는 상징적인 메타포를 지울 수 없다. 괴물의 입은, 하나의 여성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속에서 새로 탄생한 “남아”가 세상을 바꾸어 간다는 플롯은, 감독의 발상 전환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듯하다.
영화 속 존재하는 반미코드를 살펴본다면, 2006년 당시에는 이라크 전쟁과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 등 한국 사회에 내재되어있는 미국 정부에 대한 반대가 녹아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속에는 꾸준하게 TV가 등장하는데, 영화 괴물에서 등장하는 TV 속 뉴스에는 이라크전 영상이 흐르며,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브리핑하는 정부 인사, 또한 괴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미군 등이 등장한다. 괴물이 한강에서 사람들을 공격할 때 희생당한, 미군 도날드 하사가 괴물에서 근원 된 바이러스로 사망했다고 브리핑하는 미군 관계자의 모습은 “거짓말쟁이 미군”의 모습을 명확하게 해준다. 강두의 가족들을 병원에 가두고, 도날드 하사의 사망 원인인 바이러스를 찾아내겠다고 시도하는 미군과 실제로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군의 명분을 위해서 한다는 진실에 대하여 강두의 가족들은 분노한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괴물은” 현재 독립된 주권 국가로 있지만, 대한민국 영토 내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를 나타내는 점과 맞닿아있다. 강두의 가족 중 남성들의 모습은, 식민지 남성성과도 연결된다. 미군에 맞서 싸우는 강두의 모습은 강인하나, 결국 현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세주를 돌보는 것으로 굴복한다. 둘째 아들 남일은, 운동권 출신으로 폭력적이다. 여동생 남주에게 욕을 퍼붓는다든가, 현서의 참관 수업에 술에 취해서 가는 것 등 사회에 저항하나 어느 한 편으로는 누군가를 억압하는 모습에서 식민지 남성성을 보여준다. 현서의 죽음으로 그의 삶도 전환되는 듯하나 전환점이 가족의 죽음이라는 것에서 아직 전환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운동권 활동만 하다 술에 찌든 남성이라는 것은 독재정권을 탈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주둔의 이유를 납득하는 586세대를 확실하게 나타내주는 장치가 아닐까.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숫자는, 남성 캐릭터보다 훨씬 작다. 남주와 현서가 등장하고, 이름 모를 현서의 어머니가 “남성들의” 대화 속에서만 등장한다. 화면에서 움직이는 남주와 현서의 캐릭터는 특별하게 설정되지 않는다. 마치 그녀들은 도구로서 존재한다. 현서와 남주는, 다른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보다는 강인하나, 그녀들은 남성들의 활약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 같다. 현서는 영화 초반에 괴물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인하여 사건이 발생되고, 남주는 현서를 추적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키가 되지 않으며, 하나의 영화 속 배경으로 존재한다. 물론 2000년대 개봉되고 제작된 한국 영화들을 둘러보았을 때, 이만하면 충분히 입체적이라는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히 사건의 방아쇠로만 이용된 여성 캐릭터들에 대하여 아쉽다는 평가를 줄 수밖에 없다. 감독은 사회를 비판하며 풍자하고자 했으나,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마치 슈퍼마리오 게임이 피치공주의 납치로 시작되는 것과 같이, 영화 괴물 또한 현서의 납치로 시작되었으니 괴물 영화의 플롯을 거부함과 동시에 평범한 여성 구출의 플롯을 따라가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영화 “괴물”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살인의 추억”으로 관객들에게 각인된 한국 영화 감독 봉준호를, 세계적 스타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영화로 평가할 수 있다. 납작하게 표현된 여성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운동권 남성, 애 엄마가 도망간 남성 등의 모습을 등장시킨 영화로써, 가장 한국적인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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