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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4탄- 말레이시아 플랜트 수출 이야기-"동방을 알고 한국을 배우라" 위클리홍콩 2022-05-06 11:07:53

1990년대 초 당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은 낙후된 가전제품 제조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말레이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진 기술 보유국인 한국에서 기술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캐치프레이즈로 "동방을 알고 한국을 배우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 근무하며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았던 친구 중에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과의 관계가 친밀하였던 말레이시아 부동산 그룹 상장사 KLIH의 DATO(다또) TIONG(둉) 회장으로부터 긴급하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KLIH그룹이 말레이시아 정부의 투자 혜택으로 콴탄(Kuantan)지역에 MEC(Malaysia Electric Company)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TIONG 회장이 나를 수도 KL로 초청하여 직접 MEC의 청사진을 브리핑해주었고 본인 소유의 자가용 비행기로 수도 KL을 출발하여 Kuantan 상공을 비행하며 현장 설명까지 해주었다. 한국업체를 컨택하여 말레이시아에 플랜트를 이전하여 소형주방 가전제품인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을 현지에서 생산하려는 계획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냉장고, 세탁기 등 대형가전제품(백색가전제품) 중 세탁기 생산설비를 턴키(Turn-Key)방식으로 신속하게 설치하고자 하여 TIONG 회장은 나에게 그의 대리인 위임장을 만들어주었다.


세광알루미늄의 플랜트 수출 계약식, 앞줄 오른쪽 첫 번째 TIONG 회장, 왼쪽 두 번째 유재원 대표,뒷줄 왼쪽 네 번째 필자

주요 한국업체 중 삼성에 근무하였던 연유로 삼성 세탁기 광주공장을 직접 방문하여 제일합섬에서 당시 사원으로 근무 시 자금부 과장으로 근무하였던 서영근 공장장과 삼성의 플랜트 수출을 검토하였으나 말레이시아 현지의 삼성 제품 수입 판매상과 삼성 경영층의 반대로 진행이 불발되었다. 세탁기의 삼성과의 계약 성사가 불가능한 사이에 우선 소형가전제품 이전을 먼저 말레이시아에 소개하였다. 당시에 공교롭게도 '풍년 압력밥솥'으로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세광알미늄(현:PN풍년)과의 협력 합자회사인 '풍년 전기' 공장을 중국 심천에서 본인이 운영하고 있었기에 풍년 제품을 먼저 MEC측에 소개하기가 가장 용이하였다. 그리하여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의 미화 약 400만불의 턴키 베이스식 플랜트 수출계약을 성사시켰다.

 플랜트수출 계약식장에서 프레젠테이션 중인 오른쪽에 서 있는 필자

말레이시아 정부에 처음으로 소형가전 플랜트 수출을 계약하였다는 뉴스가 한국의 경제신문에 실렸고, 자연스럽게 서울의 몇몇 가전업계에서 본인과의 연결을 원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실버 스타 서울사무소(오기환 대표)를 통하여 신일산업의 플랜트 담당 상무이사가 대략적인 플랜트수출 협력 의사를 타진하여 왔고, 신일산업(현:신일전자)의 김영 대표와의 통화 후에 즉시 한국에 있는 신일산업 방문과 미팅을 결정하였다. 창업자인 김덕현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여 개발하였던 신일 세탁기의 제조 판매가 '신일 선풍기'로 소형가전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 굳어져 있어서 대형가전 4사와의 경쟁은 처음부터 굉장히 무리였다고 한다. 한국의 명품 주요 가전사인 삼성, LG, 대우, 동양매직 등과의 경쟁에 밀려서 판매를 중단하고 막대한 개발비를 허비한 후 모든 금형(Mould)을 대구공장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하였다. 삼성과의 협력 실패를 겪었던 나로서도 신속히 신일과의 미팅을 추진하게 되었고 수원의 신일산업 본사를 직접 방문하였다.

 

이미 압력밭솥 및 전기밥솥 턴키(Turn-Key) 프로젝트를 본인이 어레인지하여 말레이시아의 MEC회사에 계약을 성사시킨 이야기가 한국의 경제신문에 실려 있었기에 신일의 입장은 적극적이고 결사적이었다. 중고품인 금형을 타국에 신속히 판매 처분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다. 그 당시 국내 가전사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창업주가 만들어 놓은 자동 전기세탁기 금형은 한국 시장에서는 유행이 지난 업로딩 방식(뚜껑이 위쪽에 있음)이었고, 세탁기 문을 앞에서 여닫는 프론트로딩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요구가 변화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창고에 보관 중인 애물단지 재고 자산이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그 당시 시장의 요구가 구형이냐 신형이냐가 아닌 일반 전통적인 업로딩이라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안성맞춤이었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본인이 말레이시아와 신일산업의 양쪽에 소개한 프로젝트는 시급하게 진행되었다.

 중국 심천의 풍년 전기공장 1차 수출 컨테이너 출고식

드디어 말레이시아 MEC Group에 턴키방식의 세탁기 생산라인을 1년 이상의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1998년 초에 선적, 수출하였다. 본인도 양측의 상담부터 플랜트완공까지 같이 참여하면서 경험한 엔지니어링(工程,Engineering) 현장 실무로 그 후 중국에 본인 소유의 '보람 공장'을 설립할 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회사의 분위기가 IMF 등을 겪으며 침울한 분위기에서 이런 대형 프로젝트는 신일산업의 재정상황도 일시에 바꾸어 놓았음은 물론이었다. 한국의 두 업체(신일산업, 세광알미늄)를 본인이 말레이시아 파트너사에 소개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후, 두 회사가 플랜트수출로 미화 약1,400만 불의 외화획득을 기록했다. 특히 신일산업이 수출계약 후 대금결제 시점은 IMF로 모든 한국의 중소기업이 어려웠던 상황이었고, 계약 당시의 미화가 IMF로 인해 한화 환율이 두 배 정도로 평가절하되는 바람에 당시 자금적인 큰 어려움에 있었던 신일산업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한&말 양국의 신일세탁기 턴키(Turn-Key) 방식 수출 프로젝트는 나에게 있어서 IMF 경제위기에 처한 모국에 조그마한 헌신을 할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한편 창업주 김덕현 회장의 쌍둥이 아들중 둘째인 김원 부사장은 대학 4학년 때인 1976년경에 학교 선후배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그 당시 규모가 제법 있고 브랜드 인지도가 있었던 중소기업인 신일산업 창업주의 자제였음에도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하였던 후배였다. 졸업 후 20년 후인 1995년에 말레이시아 정부의 프로젝트 에이전트로서 신일산업 대표인 장남 김영 사장을 사장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어딘가 면식 있는 사이라 혹시나 해서 김원 씨가 아닌지 물어보았고, 옆에 있던 중역 한 분이 김원 부사장을 불러온 후 대면시키는 바람에 비로소 두 사람이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기묘하게 신일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작고하신 창업주 김덕현 회장님이 모든 프로젝트를 마치고 회장실에서 대면하였을 때 '신일'을 대표하여 정말 고맙다고 하시며, 내가 중국말을 해서 처음에는 화교인 줄 알았다고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신일 전자 회사 연혁 1997 말레이시아 세탁기 플랜트 수출 및 기술 이전, 조립라인 구축
(참조: https://www.shinil.co.kr/ko/company/history.asp?from=1990&to=1999)

이러한 커다란 사건 뒤에는 나의 인생살이에서 항상 하나님의 뜻이 함께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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