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먹었던 추억의 음식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생각나고 찾게 된다. 추억이 깃든 음식에는 맛 이상의 향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 먹었던 간식은 특별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았지만, 참 맛있었고 온 세상을 가진 듯한 행복감을 줬다.
나에게 어린 시절 먹었던 추억의 간식을 꼽으라면 역시 까이단자이(雞蛋仔)다. ‘작은 달걀’이란 이름의 까이단자이는 egg waffle, egg pupps, eggette, bubble waffle 등 수많은 영어 이름을 갖고 있다. 까이단자이는 나에게뿐만 아니라 홍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모두 기억하는 추억의 간식이다. 혹시 홍콩에 살면서 아직도 까이단자이를 안 먹어봤다면, 홍콩 로컬 푸드 기초반조차 떼지 못한 것이니 꼭 먹어보길 강추한다.
까이단자이 냄새는 마치 한국의 델리만쥬처럼 골목 끝에서부터 달달하고 진한 버터향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일단 이 냄새를 맡으면 까이단자이 가게 앞을 지날 때까지 마음속으로 계속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갓 구워낸 까이단자이를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주문하는 즉시 주인장이 올록볼록한 벌집 모양 와플 팬에 반죽을 붓고, 앞뒤로 팬을 뒤집어가며 구워내면 몇 분 만에 따끈따끈한 까이단자이가 나온다. 반죽의 양이 부족하거나 와플팬을 제때 뒤집지 않으면, 올록볼록한 벌집 모양이 제대로 안 나오기 때문에 나름의 노하우와 스냅 스킬이 필요한 작업이다.
겉은 크리스피하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동그란 퍼프(puff) 안쪽은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다. 퍼프 한 조각을 뜯어서 입어 넣으면 쿠키같은 크리스피함과 쉬폰 케이크같은 폭신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상하게 까이단자이는 입으로 베어서 먹지 않고 손으로 퍼프를 한알 한알 뜯어먹어야 맛있다.
어릴 때 자주 가던 까이단자이 단골집은 사이완호역 부근 맥도날드가 있던 타이온 빌딩 안에 있던 작은 가게다. 타이오 빌딩 안쪽은 빛이 잘 안 들어오는 상가인데, 어린 마음에 괜히 이 상가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까이단자이가 아니라면 이 안쪽 상가까지 잘 가지 않았는데, 까이단자이의 유혹에 넘어간 날이면 두려움도 이겨내고 이 가게를 찾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예전만큼 까이단자이를 자주 먹지 않지만, 간혹 진한 버터향을 맡으면 어김없이 ‘살까 말까’를 고민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완차이 A1출구 부근에 까이단자이를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이 앞을 지나면 괜히 버터향 냄새를 더 오래 맡고 싶어 걷는 속도를 늦추곤 했다.
참 단순한 와플인데, 누가 처음 까아단자이를 만들었을까? 까이단자이가 처음 만들어진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다양한 설은 있다. 첫 번째 설은 전쟁 직후 달걀은 비싸서 아무나 먹을 수 없었는데, 달걀 모양의 와플팬을 제작해 달걀 없는 와플 반죽으로 와플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진짜 달걀 대신 달걀 모양의 와플을 만들어 영양가가 있는 간식으로 보이게 만들 의도였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두 번째 설은 길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던 거리 행상인이 깨진 달걀을 헐값에 사서 만들어 팔던 와플이 지금의 까이단자이의 시작이라는 설이다. 마지막 가장 보편적인 설은 1950년대 한 슈퍼 주인이 팔지 못하는 깨진 달걀을 버리지 않고 밀가루, 버터, 연유를 넣어 만든 것이 까이단자이의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까이단자이는 대표적인 홍콩의 음식이자 간식이다. 지난 2019년 홍콩 럭비 세븐 경기 당시, 캐세이퍼시픽이 경기 홍보 영상물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See you at the Sevens 2019”라는 제목으로 영상물 3편을 공개했는데, 각각의 영상에서는 럭비 선수들이 차를 마시는 모습, 까이단자이를 먹는 모습, 마작하는 모습이 나왔고, 홍콩의 문화와 럭비 세븐 경기를 적절히 섞어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홍보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재밌는 영상이었다. 이 홍보 영상에서도 까이단자이가 등장했으니, 까이단자이가 얼마나 홍콩의 대표성을 띠는 음식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광고를 찾아보고 싶은 사람은 구글에서 ‘adforum see you at the Sevens 2019’를 검색하면 3개 버전을 모두 찾을 수 있다.)
까이단자이는 70여 년 홍콩의 경제 성장과 침체 속에서도 홍콩 소시민들의 소울푸드로 자리잡았다. 전쟁 직후 1950년대 가난했던 시절, 와플 하나를 다 살 수 없었기에 퍼프를 뜯어서 한 알씩 팔았다고 한다. 까이단자이 하나에 퍼프가 30개 정도 되니, 30명이 이 와플 한 개를 쪼개 먹은 격이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에 제조 산업이 중국으로 이전하고 중국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홍콩으로 유입되면서 실업자들이 늘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카트를 개조해 거리에서 음식들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때 까이단자이를 팔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동성 때문에 숯불을 카트에 실어 와플을 구워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홍콩사람들은 숯불에 구운 이 까이단자이를 가장 맛있는 까이단자이라고 말한다. 아마 이 또한 과거 추억의 맛 때문이지 않을까?
오늘날 까이단자이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졌다. 전통 방식을 고수한 숯불에 구운 기본 까이단자이부터 초콜릿, 마차, 검은깨, 커피 등 다양한 맛의 알록달록한 까이단자이도 생겼고, 까이단자이가 아이스크림 콘이나 팬케이크가 되어 아이스크림과 다양한 토핑들을 곁들인 화려한 디저트가 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까이단자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져서 행복함이 배가 되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지금 까이단자이가 생각나지 않으신가요? 그럼 지금 바로 까이단자이를 사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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