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하우에 사는 홍콩인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간 적이 있다. 홍콩 가정식으로 가득 채운 식탁에 둘러앉아 지인 아버지께서 좋아한다는 우리나라 소주를 주고받으며 한껏 흥(술기운이었을지도 모른다)이 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친구 아버지께서 나한테 대뜸 “이 집에 귀신 나오는거 알아?”라고 물었다. 아니 애도 아니고 무슨 귀신? 콧방귀를 꼈다. 친구도 농담이 아니란 듯 정색하곤 “예전에 이 집에서 사람이 죽었대”라며 괜히 더 오싹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여기 임대료가 엄청 싸! 우린 귀신도 안 믿고 무엇보다도 기가 쎄서, 오히려 땡큐하고 바로 이 집을 계약했지!” 의기양양한 모습에 이 사람들 기가 쎈지는 알 수 없지만 다들 ‘한 담’들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홍콩에서는 자연사, 병사가 아닌 자살, 살해, 돌연사 등 사망 사고가 일어난 집들을 광동어로 ‘헝작(hung zaak, 흉택(凶宅))’이라고 부른다. 나한테 돈 줄 테니 누군가가 살해당한 집에 들어가 살라고 하면, 몰랐으면 살겠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는 찜찜하고 께름칙해서 못 살 것 같다. 홍콩 사람들도 흉택을 기피한다. 나처럼 단순히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찜찜함 때문만은 아니다. 풍수지리적으로도 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외부 환경이 그곳에 생활하는 사람의 운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흉택에 살면 불행해진다는 미신이 있다. 같은 이유로 장례식장, 병원, 교회 근처에 사는 것을 기피한다.
이런 미신 때문에 부동산 중개인은 잠재적 구매자에게 매물의 ‘흉흉’한 과거를 알릴 의무가 있다. 심지어 흉택 리스트가 있어 내가 사는 건물이 이 리스트에 올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두려움 때문이든 미신 때문이든 흉택이 기피 대상이다 보니 인근 아파트보다 보통 30% 이상 더 저렴하다. 심지어 사건이 발생한 집뿐 아니라 옆집이나 같은 층, 심지어 같은 건물에 있는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기도 한다. 흉택 리스트에는 보통 층과 호수 등 구체적인 정보 없이 건물명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한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오히려 이런 흉택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홍콩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홍콩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은 마치 환상을 쫓는 것처럼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2018년 UBS 보고서에 따르면, 20년 이상 저축해야 650sqft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다. 2019년 Demographia International Housing Affordability Study 보고서에서는 21년간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해야 집을 살 수 있다고 한다. 2년 전 19.4년보다 길어졌다.
부동산 포털사이트 Squarefoot가 2019년에 1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명 중 1명 이상(54%)이 가격이 매력적이라면 흉택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미신이나 귀신보다 집 없는 현실이 더 서러운 셈이다.
아무래도 홍콩의 비싼 집값과 주택 문제는 홍콩의 대표적인 고질적인 사회 문제다 보니 이를 주제로 한 홍콩 영화도 많다. 내 집 마련의 홍콩인들의 꿈과 흉택이란 개념을 가장 잘 반영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2010년도에 개봉된 ‘드림홈(維多利亞壹號)’을 추천한다.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어릴 적 재개발로 집을 잃고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던 여주인공이 언젠가 하버뷰 아파트에 살겠다는 꿈과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았다. 낮에는 대출 상담원, 저녁에는 명품샵 판매원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돈을 모아도 돈이 모이는 속보보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더 빨랐고, 내 집 마련의 꿈이 멀게만 느껴져 좌절했다. 병세가 악화된 아버지의 보험금으로 꿈 실현을 목전에 두게 됐지만, 집 시세가 계속 오르자 집주인이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분한 주인공은 그 집을 흉택으로 만들어 가격을 떨어트리기 위해 경비원과 이웃집 주민들을 살해한다. 결국 살인사건으로 아파트 시세가 떨어지자 집주인이 원래 가격보다도 더 저렴한 가격에 팔겠다고 연락이 오면서 여주인공은 끝내 꿈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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