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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홍콩 생활] 형형색색 홍콩 MTR 플랫폼 위클리홍콩 2022-02-08 15:04:49


오래 전 한 지인이 처음 홍콩에 여행왔을 때, 일일 투어가이드가 되어준 적이 있다. 센트럴 소호에 있는 맛집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이날 처음 MTR 지하철을 타본 지인은 내내 창밖을 보다가 대뜸 “여기 지하철은 역마다 색깔이 다 다르네, 신기하다!”하고 감탄한 것이다. 

 

사실 홍콩에 좀 살아봤다 하는 사람들은 굳이 안내방송이나 불빛이 깜빡이는 노선도를 보지 않고 플랫폼 벽 색깔만으로도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 센트럴, 몽콕은 빨간색. 카우룽통, 람틴 파란색. 노스포인트, 틴하우는 주황색. 코즈웨이베이는 보라색. 초이홍은 이름 그대로 무지개색. 이 정도쯤은 그냥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만원 지하철을 타더라도 열차 창문 밖만 보면 내가 어느 역에 도착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아니, 어떻게 플랫폼 벽 색깔을 이렇게 형형색색 다르게 할 생각을 했을까. 항상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몇 년 전 어느 날, MTR 수석 건축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나 같이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인터뷰 내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Andrew Mead 수석 건축가에 따르면, 햇빛 한 줌 없는 깊고 칙칙한 지하 터널이 가진 우울감 때문에 의도적으로 플랫폼 벽을 밝은 색상으로 칠해 균형감을 줬다고 말한다. 또한 각기 다른 색깔로 꾸밈으로써 역마다 정체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글을 못 읽는 문맹인들도 쉽게 역을 찾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능성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이유가 흥미로웠고 아마도 가장 주된 이유였다고 믿는다. 공식 통계가 없지만, MTR이 처음 들어서기 시작했던 1970년 후반 때까지만 해도 홍콩의 문맹률이 꽤 높았다고 한다. 영어나 한자를 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색깔로 쉽게 역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 또한 어릴 적 혼자 지하철을 타고 심부름을 하러 갈 때면, 엄마가 일러준 ‘6개 역을 지나고 빨간색 역에서 내린다’를 마음속으로 되뇌기며 갔던 기억이 있다. 

 

MTR 플랫폼 색은 그냥 아무렇게나 색깔이 정해지지 않았다. 찾아보면 재밌는 숨은 이야기들도 많다. 초이홍은 무지개를 뜻하는 역 이름을 그대로 따와 무지개색으로 칠했다. 웡타이신은 이름 안에 노랑을 뜻하는 ‘웡(黃)’에서 따와 노란색이다. 라이치콕은 이름 속 과일인 빨간 라이치 때문에 빨간색이다. 에드워드 프린스는 영국 왕족의 상징하는 보라색이다. 

 

혹시 다이아몬드 힐은 어떤 색깔인지 아는가? 다이아몬드 힐은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 점찍히듯 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참으로 재밌지 않는가.

 

지리적 환경에서 아이디어를 따오기도 했다. 왐포아는 지리적으로 물과 가깝기 때문에 파란색, 호만틴은 언덕이 있기 때문에 초록색이다. 

 

이렇게 역마다 각기 다른 색깔로 꾸몄으면서 왜 공항으로 가는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노선의 역은 모두 특색 없는 회색빛일까? MTR사는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노선을 홍콩국제공항의 연장선으로 봤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국제공항과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홍콩국제공항을 건축한 Norman Foster의 대표색인 회색으로 칠한 것이다. Norman Foster는 홍콩국제공항, HSBC 본사 건물 등 다수 홍콩의 시그니쳐 건물을 건축한 하이테크 건축계의 거장이며 건축 디자인에 회색을 많이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플랫폼에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배치해 세련미를 더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홍콩역과 센트럴 사이를 잇는 길목에 예술가 Gaylord Chan의 로켓 삽화 ‘Swift and Safe’가 설치돼 있다. 홍콩역에는 Dancing Ribbons, Flight of Fancy, Tsing Yi역에는 Ocean Garden, Beginning of Jorney 등 설치 미술 들이 설치되어 있다.

    Tung Chung역, Link

Hong Kong역, Swift and Safe

MTR사는 역 내에 현대미와 예술미를 더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곳곳에 설치하고 있다. 그 지역 특성과 역사에 부합하는 예술작품을 설치하니, 승객 입장에서는 역 내를 걷기만 해도 공짜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HKU 역내를 걷다 보면 벽면에 그려진 옛 홍콩 모습에 마치 과거의 홍콩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레이퉁 역내를 걷다 보면 마치 용선 경기 현장에 서 있어 저 멀리 북소리가 둥둥 들려오는 듯하다. 오션파크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헤엄치는 물고기 그림들 때문에 벌써 신이 나 마음이 둥둥 뜬다.

 HKU역, Streets and Alleys of the Western District

Lei Tung역, Journeys along the South Island모르고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고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이번 주, 우리 집 앞에 있는 역에는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을지 한번 걸음을 멈춰보고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지 누가 알겠는가.

 

* 더 많은 MTR 역 내 예술 작품 찾아보기(Art in MTR) :

https://www.mtr.com.hk/en/customer/community/art_architecture.html


칼럼리스트 소개 : 

[슬기로운 홍콩 생활]은 홍콩에 30년 이상 거주한 교민 2세인 두나씨가 그동안 홍콩에서 거주하면서 경험하고 목격한 홍콩에 관한 역사, 생활, 문화, 정보 등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를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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