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성 짜오칭시(肇慶市) 신흥현(新興縣)에서 주방용품 임가공공장인 국영AAA공장과 수출 관계로 협력하고 있었던 1990년대 초에 국영기업의 실제적인 최고 관리자였던 짜오칭시 서기(書記)와 시장(市長) 그리고 관련 정부 인사들과의 교류는 본인에게 필수적이었다. 왜냐하면 중국의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국영 기업 형태로 운영되던 그 당시의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이들과의 빈번한 인간적인 교류를 통하여 한국인과 중국인이라는 국적을 뛰어넘어 가까운 친구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광동성 주요 행정단위 중에서 비교적 오지인 짜오칭시(肇慶市)는 한국인들이 방문한 적이 별로 없고 본인이 중국 시 정부 관리들과 투자 관련으로 교류하게 된 첫 번째 한국인이라고 전해주었다.
당시에는 개혁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중국의 행정단위마다 외국인을 경제고문으로 임명하여 투자유치를 촉진코자 하였다. 지방정부 고위 관리들은 영어를 배운 세대가 아니어서 중국어로 소통이 원활한 본인과의 교류가 편했고, 이들 중국 지도자들 눈에는 한국 기업인들의 투자 촉진을 위한 고문에 본인을 임명하면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하여 단주구(肇慶 端州區)의 경제고문으로 임명하였다. 정부의 지방정부 고위직이 받았던 금액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형식적이지만 연간 인민폐 12,000¥을 급여로 받았다. 본인이 중국의 광동성 산하의 정부 기관으로부터 임명된 최초의 경제고문이었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편 본인은 한국의 기업인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으로 짜오칭(肇慶) 지역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국을 돕고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중국 정부 지도자들과 함께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서울에서 투자설명회를 해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드디어 한국의 선진기술을 배우고 중국에 한국기업을 유치하고자 2차에 걸쳐서 약 50여 명의 중국 정부 지도자들의 한국 산업시찰단을 조직하여 각각 7박 8일 동안의 한국방문 스케줄을 잡았다.
중국 짜오칭시(肇慶市) 정부 지도자들의 한국 방문 시 휴전선 방문을 통하여 이들에게 남북한이 체제경쟁을 피하고 서로 경제발전을 도모함이 상호 간에 유익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1사단 지역의 제3땅굴 견학을 필수 방문코스로 만들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에 신속하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현장을 보여주기 위하여 포스코, 삼성, 현대, LG 등의 대기업뿐만 아니라 세광알미늄(풍년 압력밥솥), BYC, 세기 고주파, 삼구쇼핑 등 중소기업을 방문하는 산업시찰 일정도 방문지역에 포함하였다.
본인도 해외에 오랫동안 거주하여 모국의 경제발전 정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으나 이러한 산업시찰을 동행하며 중국과 한국 간의 산업 발전의 격차를 느끼게 되었으며, 어떠한 제품과 설비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전되어야 할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의 결과로 짜오칭시(肇慶市) 공산당사 재건축에 일본산 엘리베이터로 설계에 넣어 있었던 제품을 변경하여 한국산 LG산전 제품으로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시공하게 되었다.
모든 공산당사 건립 초 설계 도면상에 일본산 엘리베이터로 모든 게 확정된 상태에서 변경이 불가한 사항을 본인의 설득과 한국제품의 가격경쟁력 그리고 담당 관리들의 LG산전 공장방문 등으로 한국산으로 바꿀 수 있었던 정말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짜오칭(肇慶) 시내의 국영기업인 남방 백화점 그룹의 신규 백화점에도 엘리베이터 및 에스컬레이터를 전부 한국산으로 설치하였다. 그때까지 홍콩에만 진출한 한국산 LG산전 엘리베이터가 중국 광동성(廣東省)에 최초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광동성 내 중국 정부 건물에 설치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중국 산업시찰단이 창원에 있는 LG산전의 엘리베이터 공장을 방문하면서 세계적인 기술인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시승해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일이었다.
또한 짜오칭지역(肇慶地區)에 수입되는 일반상품도 유럽 일본산이 주류였으나 한국의 산업시찰과 여행 후에 모든 정부 지도자들이 한국산 제품의 생산 과정 및 유통과정을 직접 보고 본인이 구입하여 사용해본 후에 열렬한 한국상품 애호가 겸 판매원이 되었다.
원래 중국 정부에서 본인을 경제고문으로 임명하여 중국에 한국업체의 투자유치를 목적으로 하였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오히려 중국으로 한국의 제품과 설비가 많이 수출되었고 본인도 광동성 지역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이윤을 창출하게 되었다.
본인의 관점에서는 한류의 근원이 짜오칭시(肇慶市) 정부 관료들이 매일 사용하는 LG산전의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일찍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몇 년 뒤 광동성 지도자들의 내부 회의에서 짜오칭시 단주구(端州區) 경제고문인 본인의 한중간 투자유치 활동에 대한 업적을 높게 평가하여, 江門市 신훼이(新會區)에서도 본인을 경제고문으로 위촉하였고 그 후에 신훼이(新會區) 명예 시민증까지 받게 되었다.
평소에 중국인들과의 부단한 교류 덕분에 이러한 과분한 대우를 받았으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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