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시오’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뇌가 작동하는 무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이도공간>은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인 장국영의 강의로 시작된다. 귀신을 보는 장흔의 장면이 나오고, 귀신은 단지 뇌에 저장된 정보일 뿐 “여러분이 귀신을 언급하는 일이 다시는 없길 바랍니다”라며 냉정한 의사의 모습이 보인다. 귀신을 믿지 않는 의사로 말이다.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의사 짐(장국영)은 친구의 소개로 장흔이라는 여자를 상담하게 된다.
장흔(임가흔)은 집주인이 해준 아들과 아내의 이야기 때문에 집에서 귀신들을 보는 사람이다. 욕실에서 혼자 목욕할 때 파이프를 타고 들려오는 이상한 귀신 소리, 거울을 통해 보이는 이상한 남자, 산사태로 죽은 집주인의 아들과 아내를 보는 그녀. 장흔을 상담해주는 짐은 장흔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라면 상상을 많이 하는 직업이죠”라는 말로 귀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만 따뜻한 말로 장흔을 위로하기도 한다. 자살 시도까지 한 장흔에게 우유 사탕을 처방해 주기도 하며.
그렇게 장흔의 귀신 치료가 완치될 때쯤, 장흔과 짐은 사랑하는 사이가 됐고, 어느 날 친구들과 재미있게 대화를 떠들다 짐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폭력을 가한다. “왜 살아있어!”냐는 물음과 함께. 이후, 그는 그 아주머니의 존재를 생각해 내려다 몽유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밤새 갑자기 일어나 이런저런 자료들을 살펴보고 중얼거리며 다시 잠들다 일어나는 그.누군가가 옆에서 소리를 쳐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 아주머니는 누구였을까.
영화 내내 과거 회상씬이 등장한다. 교복을 입은 앳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그들은 서로 껌딱지처럼 붙어있다 어느 순간 여자아이는 가위로 자신의 손목을 자른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장흔인 것처럼, 마치 장흔이 자신의 실연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는 끌고 가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즈음 짐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밝힌다. 짐이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친구가 짐의 태도 변화로 인해 자살을 선택했고, 짐은 거기서 장례식과 죽은 여자의 얼굴을 보게 된 것. 이후 계속해서 짐을 따라다니는 귀신과 결국 마주한 짐.
“내 죽음으로 과거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부서진 건 되돌릴 수 없어.
우린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야.
영원히 못 잊어.”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짐은 귀신과의 키스 후 귀신은 사라진다.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이후 장흔과 함께 있는 장면이 나오고, Carry on - May Chen(진미산)의 노래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잊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도공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짐이 이야기한 위 문장 아닐까. 장흔이 잊고자 한 기억들을 파헤치려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잊기로 한 기억이었다는 것을. 기대 이상으로 연출이 뛰어났던 작품이었다. 귀신을 보는 여자와 귀신 따위는 믿지 않는 남자의 대조 관계를 사용해서 결국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알고 보니 남자의 것이었던 흐름에서 말이다.
단순히 공포 영화로 이 영화를 바라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을 것이다. 장국영의 사랑과 두려움을 넘나드는 섬세한 표정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공포 영화 이상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스토리는 짐이 장흔의 일기를 읽다 과거 기억이 떠오르는 플래시백 장면이다. 앞서 장흔이 이야기했던 과거 일화, 그리고 장흔의 일기를 읽고 있었다는 점에서 장흔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실은 짐의 이야기였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이자 스토리의 완성도를 느끼게 한다.
또한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귀신을 언제부터 믿었을까? 나는 귀신이 진짜 있다고 믿는 사람인가? 귀신이야말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코끼리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귀신을 어떻게 묘사하고, 귀신은 문화적으로 어떤 존재일까?
영화 <이도공간>을 보고 나면, 귀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흥미롭기도 했다. 내가 장흔이었다면 그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었을까? 내가 짐이었다면 장흔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 의사였을까? 의사는 귀신을 본다고 주장하는 환자를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도 들었다.
한편, <이도공간>이 장국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의미는 '장국영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크다. 이 작품이 그를 그리워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귀신을 떠올릴 때 궁금했던 점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금쯤 어떤 작품을 촬영하고,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그의 팬으로서 매우 궁금하지만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그를 더 그립게 만든다. 그렇기에 장국영 특별전에서 <이도공간>을 자주 틀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언젠가 장국영 특별전에서 <이도공간>을 틀어줄 일이 있다면 꼭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리라 다짐하며 <이도공간>에 대한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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