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에 입문한 지 올해로 만 23년(1999년 3월에 입문을 했으니까).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어교사의 길은 늘 어렵게 느껴진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의도적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의 경우 1년 52주 중 방학 및 휴일 기간을 감안하여 48주라고 한다면 48주X5일X3시간X20년=14,400 시간이라는 계산법이 나온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한국어교육의 전문가로서 학습자를 만나는 일이 쉬울 만도 한데, 매번 매시간이 어렵다. 왜? 학습자는 정해지지 않은 임의의 값인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별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며,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학습 동기가 다르고, 학습 목적이 다르며 학습 능력 또한 다르다. 이 각기 다른 학습자들을 한 교실에 모아, 주어진 학습 목표에 의거하여, 표준 교안을 활용하는 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다.
그동안 가르쳤던 학습자들의 국적을 보면 일본, 중국, 미국을 비롯하여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거기에 소수이지만 그리스, 폴란드, 영국, 스웨덴,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페루, 에콰도르 학습자까지 거론하면 그 범위가 더 넓다. 이렇듯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 사회 문화적 배경이 상이한 학습자들을 한 교실에서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교사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 나처럼 학습자의 조사 사용과 어휘 선택에 엄격하고, 접속사와 어미 처리에 예민해지기도 한다. 1교시에 학습자에게 매번 묻는 ‘아침 먹었어요?’라는 질문에 ‘없어요.’라고 매번 똑같이 대답하는 중국인 학습자가 이해가 안 되고, 상대방을 김 씨, 이 씨라고 지칭하는 일본인 학습자의 일기에 화가 나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라고 질문했을 때 스파게티나 스시 혹은 햄버거라고 대답하면 그 학습자에 대한 호감도가 급 떨어지고, 정부초청장학생으로 온 학습자가 주말에 친구들과 클럽에 갔다 왔다고 하면 반감이 확 생긴다. 한 마디로 나는 내 기준만 확고한 교사였다.
이러한 경직된 내 기준은 중국의 대학에서 학문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국 현지에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학습자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현지에서 생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하나씩 체험하고 있었고, 전혀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을 선택하기가 또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부정문을 나타내는 ‘没有(méi‧yǒu)’가 중-한 사전에서는 ‘없다’로 번역되었고, 나에게 매번 ‘없어요’라고 대답한 학생은 ‘안 먹었어요.’를 말하고자 함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 학생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어디 그 뿐인가? 식당을 나타내는 단어가 ‘饭店(fàndiàn)’인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당연히 자장면이나 짬뽕 같은 중화요리를 파는 식당을 일컫는 우리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성급한 짐작은 큰 오산이었다.
학습자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필요한 자질이자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습자의 오류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현장에서라면 학습자의 오류에 깐깐하고 야박했을 내가 중국인 학습자의 언어와 문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그들의 일반적 오류를 수긍하고 심지어는 용인하게 되었다. ‘중국어에는 주격, 목적격 조사가 없으니까’, ‘중국어에는 명사와 동사의 형태가 같은 경우도 있으니까’, 또는 ‘부탁이나 요청의 표현이 한국어와 다르니까’ 등의 이유로 그들의 오류에 너그러워지고 있었다.
4년의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곳 홍콩에 와서 성인 학습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학습 동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K-pop을 좋아해서, K-drama가 재미있어서, K-Muckbang이 흥미로워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가 있는가 하면 한글 모양이 좀 특이해서, 한국의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학습자들도 있었다. 물론 증서를 중시하는 홍콩 사회의 특성상 자기계발과 취업을 고려한 학습 동기도 없지 않았다. 내가 한국어교육에 입문했던 시기와 비교한다면 학습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학습자들은 인터넷이라는 거대 시청각 공급망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해외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홍콩인들에게 한국은 대중문화, 쇼핑, 먹거리 등으로 강하게 어필되고 있었다. 10대부터 6-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학습자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친근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 학습자들과는 문화적 소통을 즐겨한다. 순대, 떡볶이, 어묵 등의 길거리 음식을 이야기할 때 홍콩의 길거리 음식인 시우마이(燒賣)와 위단(魚蛋) 그리고 까이단자이(雞蛋仔)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남자(naam4 zai2), 학생(hok6 saang1), 모자(mou6 zi2), 전화(din6 waa6)등의 한자어는 광동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이 비슷하지 않냐며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가성비(價性比) → 성가비(性價比)’와 ‘독학(獨學) → 자학(自學)’처럼 의미는 같지만 달리 쓰이는 한자어도 언급을 해 주면서 학습자들의 흥미를 끌어낸다.
교실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나의 학습자들과 문화적 소통을 이어간다. 나의 SNS 친구들은 90 퍼센트가 홍콩에서 만난 학습자들이다. 나는 그들과 나의 홍콩 생활을 공유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이차(奶茶)와 뽀로빠우(菠蘿包)를 아침으로 즐기는 사무실 근처 차찬탱(茶餐廳), 신선한 야채와 생선을 사기 위해 들르는 동네 까이시(街市),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홍콩의 풍경을 흠뻑 담은 트레일러 등 한국어를 가르치고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한국어 교사지만 여러분의 언어와 문화를 즐기고 존중함을 보여준다. 이런 상호 존중과 이해가 있기에 오늘도 나는 ‘선생님, 칠판에 쓰세요.’라는 학습자의 부탁을 ‘선생님, 칠판에 써 주세요.’라고 웃으면서 수정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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