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에르미타쥐공연장으로 물밀듯이 쳐들어온 중국인들은 무대 가까이로 몰려가 포진을 한다. 광동어도 들리고, 만다린도 들린다. 어디서 온 걸까? 중국 본토와 홍콩인들이 각각 여행을 와서 여기서 섞인 것일까? 몽콕시장 가려다 비행장으로 끌려온 듯한 차림새의 한 중국인 아저씨가 가방을 뒤적뒤적하더니 빵을 꺼내 어귀적어귀적 씹어 먹는다. 음료수 마시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어디 그 뿐만이랴. 이쪽에 앉은 사람이 저쪽에 앉은 사람더러 이리로 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팜플릿을 보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있던 사람들은 이런 중국인들의 모습에 아연실색한다.
공연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大발레작인 '호두까기 인형'의 서곡이 연주된다. 들뜨고, 행복하고, 축복으로 가득 찬 크리스마스 전야의 분위기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해낸다.
잠시 후 아름다운 무대장치와 조명아래 무용수들이 나와 음악에 맞춰 하늘하늘 춤을 춘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낭만적인 음악과 인형 같은 발레리나들이 환상적인 발레가 공연장을 찾은 이들을 황홀 경지로 몰고 가는 순간순간 카메라의 후레시가 펑펑 터지고, 비디오를 녹화하는 손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꽃의 왈츠에 맞춰 꽃의 요정들이 나타나 화려한 무드의 춤을 추고, 하프 연주가 천상의 소리처럼 흐를 때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점점 우렁차진다. 민망의 극치다. 역사적인 이 레닌그라드에서 온 몸에 찌릿한 전율까지 느끼며 호두까기를 감상하고 있는데.... 오, 마이 갓,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중공군 후예의 습격으로 다소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관람하긴 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낭만과 열정, 환희를 가슴으로 느끼며 에르미타쥐 공연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가로등 불빛을 머금은 레닌그라드의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박물관 앞으로 흐르는 네바강에 차이코프스키의 혼이 녹아 강물은 더 깊고 푸르게 흐르나 보다.
러시아의 자존심, 에르미타쥐 박물관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부터 전화벨이 울린다. 러시아가 홍콩보다 6시간 늦다보니 하루를 한참 전에 시작한 홍콩에서 쉴 새 없이 전화를 해온다.
오늘은 에르미타쥐 박물관을 공략한다. 호텔 뷔페로 아침을 거나하게 먹고 거리로 나선다. 세찬바람에 숨이 턱 막히고 몸이 휘청거린다. 에르미타쥐 박물관을 상징하듯 서있는 알렉산드로 탑이 거대하다.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3대 박물관으로 회자되는 에르미타쥐는 외관부터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박물관 투어만큼은 한국인에게 가이드를 받고 싶었는데,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후 1시부터 시작하는 영어가이드를 신청해 놓는다. 박물관에 들어서서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오디오가이드 안내데스크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기와 대한항공이 후원한다는 안내문이 또박또박 적혀있다. 우와~
세계 3대 박물관인 에르미타쥐에서 우리나라 언어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니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오디오 가이드를 목에 걸고 제니퍼와 둘이서 작품들을 찾아다닌다. 작품이나 방 번호를 입력하면 바로 한국어로 자세한 안내가 시작된다. 다시 한 번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박물관 안은 미로다. 1,020개의 방에는 레오르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피카소, 고갱, 고흐, 르노와르를 비롯해 이탈리와 로마의 조각, 이집트 미라, 현대병기까지 빼곡하다.
이 에르미타쥐 박물관이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커다란 박물관을 강탈한 남의 나라 유적으로 채운 것이 아니라 직접 품을 팔고 대가를 치뤘다는 것이다.
그녀들의 전쟁오후 1시가 되어 영어가이드를 만나기 위해 만남의 장소로 간다. 신청자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 쪽에서 온 여성들이다. 도도한 표정의 러시아 여성이 다가온다. "너네 영어가이드 신청 한 사람 맞아? 그렇다면 따라와!"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전시관으로 걸어간다. 그녀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를 당했던 여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뭐 이런 게 다 있어'하는 표정을 하고 앉아서 버티다가 혼자서 내빼듯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안내원을 부리나케 달려가 불러 세운다.
휙 돌아보는 그녀를 쏘아보는 그녀들의 푸른 눈에서 금방이라도 초강력 레이저광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러시아 여인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설원의 늑대 눈빛도 저랬던 것 같다. 일촉즉발 순간이다. 급 당황한 제니퍼와 나는 불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다는 싸움구경을 위해 한걸음 슬쩍 물러선다.
/계속....
* 대한항공은 인천과 모스크바를 주3회 직항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글&사진 로사 rosa@weeklyhk.com>
ⓒ 위클리 홍콩(http://www.weeklyh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위클리홍콩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