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덩어리에 수백·수천만원 호가… 새로운 재테크 부상
중국서 수요 늘면서 가격 급등, 1980년산은 10년 새 40배
역시 가짜가 골치… 제조연도 속이려 포장 바꿔치기도 지난 8월 6일 한국 최고의 부자 동네라는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근처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푸얼(普 )차 전문점 쌍어각을 찾았다. 푸얼차는 중국 서남쪽 윈난(雲南) 지방에서 나오는 찻잎을 발효시켜 만든 차다. 박정호 쌍어각 대표는 ‘푸위안(福元)’ 브랜드의 푸얼차 한 덩어리를 보여줬다. 원반 모양의 한 덩어리를 1편으로 세는데, 가격은 3000만~4000만원을 호가한다고 했다. 1편에 900~1000잔 정도의 차를 우릴 수 있으므로 차 한 잔에 3만~4만원씩 하는 셈이다. 박씨는 “15년쯤 전에 푸위안 7편짜리 1통을 1300만원에 팔았는데, 그때 산 고객은 큰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위안은 100년 전인 1900년대에 제조된 푸얼차이다.
1950년대에 제조된 홍인(紅印) 브랜드는 1편당 1300만~1500만원 선, 란인(藍印)은 900만~950만원을 호가한다. 이들은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100만~200만원 선에서 거래되던 제품이다. 1970년대에 제조된 7572 브랜드는 1편당 300만원 선이다. 박씨는 “최근 10년 사이 100년 된 푸얼차는 10배, 50년 된 차는 20배, 20년 된 차는 40배 뛰었다”고 말했다.
“주식·채권보다 투자 가치 훨씬 높다”
건강 위해 사놓았다가 뜻밖 횡재도
최근 푸얼차 가격이 급등하면서 푸얼차가 부자들에게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다.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1980년대 이전 생산품뿐만 아니라 최근 생산품도 인기다.
서울 방배동에 사는 억대 연봉의 펀드매니저 이모(38)씨는 작년에 약 1억원어치의 푸얼차를 매입했다. 이씨는 “지난 10년간의 푸얼차 가격 동향을 조사해 본 결과, 주식이나 채권보다 투자 가치가 월등하다고 판단했다”며 “20년 이상 된 푸얼차는 구하기가 힘들어 새로 나온 신차와 10년 정도 묵은 차를 중심으로 매입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이씨는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올 들어 차 애호가들 사이에 푸얼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씨가 보유한 차의 가치가 작년 대비 30% 정도 오른 것이다. 이씨는 “올해는 라오반장(老班章)이라는 브랜드의 신차를 대거 매입할 예정이다”라며 “1편당 10만~20만원 하는 고가이지만 차의 품질이 최고여서 10년 정도 묵혀 두면 수익률이 상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에 사는 차 애호가 유모(49)씨는 2년 전에 10년 정도 묵은 푸얼차 1통(7편)을 800만원에 구입했다.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려서 비싸지만 푸얼차를 마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유씨는 최근 뜻하지 않은 횡재를 했다. 가격이 2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3편을 우려 마셨지만 나머지 4편은 되팔아 본전을 찾았다. 그 사이 건강도 회복됐다. 유씨는 “처음엔 건강을 회복할 목적으로 차를 구입했지만 이젠 푸얼차를 투자의 관점에서 보게 됐다”며 “내년엔 중국 윈난에 있는 야생 차원을 직접 방문해 미래에 투자 가치가 있는 좋은 차를 고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사업가 강모(40)씨는 명절 때마다 VIP 고객에게 푸얼차를 선물로 주고 있다. 매년 30만원 상당의 푸얼차를 보내던 강씨는 최근 푸얼차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자 작년 1993년산 푸얼차 1통을 미리 구입했다. 1편당 60만원씩 420만원에 샀는데 1년 사이에 가격이 2배 이상 상승했다. 올 추석에는 고객들에게 60만원을 투자해 120만원짜리 선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씨는 “친한 고객들이 벌써부터 푸얼차 내놓으라고 성화다”라며 “팔 목적으로 산 게 아니기 때문에 이익을 실현할 생각은 없지만 고객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와인처럼 오래 묵힐수록 가치 올라
장기투자 수단으로 찾는 사람 늘어
푸얼차가 이처럼 재테크 수단으로 쓰이는 이유는 와인처럼 오래될수록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통상 녹차는 제조한 지 1~2년 후엔 마실 수 없게 맛이 변한다. 하지만 푸얼차는 발효차로서 오래 묵힐수록 맛이 든다. 갓 만든 푸얼차는 녹차 맛이 나다가 숙성할수록 맑은 차맛이 난다. 때문에 세대를 넘기는 투자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국내 최대의 푸얼차 전문업체인 지유명차의 김종훈 사장은 “딸에게 물려준다며 방 하나를 비워 푸얼차를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며 “처음엔 차맛을 즐기기 위해 시작했다가 최근엔 장기 투자 수단으로 푸얼차를 고려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오래된 차일수록 희귀성이 높아진다. 도자기와 같은 골동품과 달리 차는 소비해서 마셔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오래된 와인이 비싸지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푸얼차 가격은 주 소비지인 대만·홍콩 등에서 결정된다. 국내의 푸얼차 가격은 대만·홍콩 가격에 관세 등을 감안해 30% 정도 높게 거래가 된다. 정식 수입된 푸얼차의 경우 원산지 증명이 있는 경우 20%, 원산지 증명이 없는 경우 40%의 관세가 부과된다. 20여년 전에 제조돼 대만·홍콩 등지에서 거래되던 푸얼차는 원산지 증명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관세가 높아져 국내 가격도 비싸진다.
아시아 넘어 미·프랑스로 시장 확대
전세계서 수조원 뭉칫돈이 움직인다
푸얼차의 국제 시세는 2000년대 들어서 폭등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의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푸얼차를 즐기던 대만·홍콩과 달리 중국에서는 2000년대 전까지 푸얼차를 마시는 사람이 극소수였다. 대부분 녹차 계열의 차를 마셨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대만·홍콩 등지의 부자들이 마시는 푸얼차에 대한 수요가 중국에서도 생기기 시작했다. 공산당 간부, 기업인 등이 중심이었다. 박정호 쌍어각 대표는 “홍인 브랜드는 18년 전에 홍콩 백화점에서 1편당 15만원 선이면 구입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13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며 “중국 부자들 사이에 푸얼차 소비가 늘어나면서 차 가격이 급등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중국 부자들의 수요에 대한 사례로 최근 홍콩을 방문했다가 겪은 일을 소개했다. 그는 “홍콩의 한 푸얼차 중개상을 만났더니 베이징에서 받았다는 주문서를 보여주는데 한 사람이 수억원어치의 푸얼차를 주문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엔 대만·홍콩에서 푸얼차 가격이 오르자 10여년 전에 국내에 팔았던 푸얼차를 회수해 달라는 주문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박씨는 “세계 푸얼차 시장은 중국, 대만, 홍콩뿐만 아니라 미국, 프랑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돈 냄새를 맡은 부자들이 움직이면서 과거 수백억원 단위였던 푸얼차의 국제 시장은 이제 조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여행길 구입시 가짜 요주의!
국내서 정식 수입품 사는 게 안전
푸얼차 투자에 있어 가장 걸림돌은 일반인이 진품과 가짜를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국에 푸얼차 열풍이 불면서 중국 여행객들이 기념품으로 푸얼차를 사오는 경우가 많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가짜를 사오기 일쑤다. 오히려 믿을 수 있는 국내의 푸얼차 전문점에서 정식 수입품을 사는 게 가짜에 속지 않는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종훈 지유명차 사장은 “푸얼차는 발효시켜 마신다는 것을 악용해서 살 때는 멀쩡하더라도 몇 년 후 포장을 뜯어보면 부패해 마실 수 없는 차를 만들어 파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푸얼차가 묵은 햇수를 속이기 위해 포장지를 바꿔치기 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육안으로 진품과 가짜를 구별하기 위해 대만 등에서 나온 도록을 보고 모양을 비교한다.
원료 상태인 ‘산(散)차’를 오래된 것처럼 색깔을 입혀 원반 모양의 푸얼차로 찍어 팔기도 한다. 박정호 대표는 “원료는 3년 정도 됐지만 10년 이상 된 차처럼 보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오래된 푸얼차처럼 보이기 위해 습도가 많은 곳에 차를 넣어 발효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중국 윈난이 아닌 베트남산 찻잎으로 가짜를 제조하기도 한다. 베트남산 찻잎은 품질이 떨어져 중국산의 100분의 1 가격밖에 되지 않는다.
초보 투자자는 新茶에 관심을
2008년산 고급품 10만~20만원대
푸얼차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20년 이상 된 고가의 푸얼차를 찾기보다는 최근 나온 신차를 찾는 게 좋다. 예전에는 푸위안, 송빙(宋聘), 징창(敬昌) 등 차 제조회사 브랜드가 있다가 1970~1980년대엔 국가에서 수매해서 만든 7572, 7542 등의 브랜드가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각각의 차 재배 지역에서 푸얼차를 생산하고 있다. 대만·홍콩 등지에선 라오반장 지역에서 나온 차를 ‘푸얼차의 황제’, 이우(易武) 지역에서 나온 차를 ‘푸얼차의 황후’라고 부르며 최고로 여기고 있다. 2001년 정식 수입 절차를 거쳐 들어온 ‘이우’차의 경우는 당시 3만원 정도에 팔렸으나 최근 20만원으로 올랐다. 굳이 고가의 푸얼차가 아니더라도 투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올해 생산된 라오반장은 20만원, 이우는 10만원 선에서 시세가 형성돼 있다.
푸얼차의 보관은 와인만큼 까다롭지는 않다. 상온에서 보관해도 서서히 발효가 진행된다. 까다롭게 따진다면 습도가 높은 편이 좋다. 대만·홍콩 등지에선 투자자들이 공장형 아파트에 창고를 두고 보관하기도 한다.
푸얼차에 투자하려면 우선 자료를 찾아 공부해서 각종 차 종류를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자연 그대로의 찻잎을 제조한 청병(생차)과, 찻잎 더미에 물을 뿌리고 뒤집기를 하면서 발효시킨 숙병(숙차)은 제조 방법도 다르지만 가격 차이가 난다. 이런 지식이 없다면 제대로 된 가격을 알기 어렵다.
박정호 대표는 “중국 부자들의 무한 수요로 인해 푸얼차 투자의 미래는 밝다”며 “그러나 좋은 차를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면 좋은 투자 기회도 놓칠 수 있다는 걸 투자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신 후 찻잎이 가루로 부서지면 가짜!
좋은 차는 허리·등이 훈훈히 달아올라
지유명차에 따르면 가짜 푸얼차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점검해야 한다.
우선 국내에서 판매되는 푸얼차는 전량 수입품이므로 정식 수입 절차를 거쳤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시음을 해서 맛을 봐야 한다. 김종훈 지유명차 사장은 “발효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푸얼차는 약간의 떫은 맛과 매끄러운 느낌이 있어야 한다”며 “제대로 숙성된 푸얼차라면 대여섯 잔을 마셨을 때 허리와 등줄기가 훈훈하게 달아오르면서 이마와 가슴에 시원한 땀이 맺힌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게 마시고 난 후 찻잎의 모양이다. 진품 푸얼차는 찻잎이 원래의 자기 모양으로 회복된다. 만약 원래 잎 모양으로 회복되지 않고 가루로 부서지면 가짜로 보면 된다.
물론 가짜에 속지 않으려면 차맛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차를 많이 마셔보는 수밖에 없다.
<출처 : 위클리조선 (방현철 기자 banghc@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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