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5호, 3월 28일]
"내가 낼 게." "야, 무슨 소리야. 내가 낼게"
이는 한국에서, 식사 후 ..
[제215호, 3월 28일]

"내가 낼 게." "야, 무슨 소리야. 내가 낼게"
이는 한국에서, 식사 후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이다. 그렇다면 홍콩은 어떠한가?
"다 먹었어? 그럼 가자. 총 200달러이고 우리 다섯 명이니 1인당 40씩"
홍콩에서 한국과 같은 상황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비싼 음식이든 싼 음식이든 관계없다.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하는가의 여부도 때로는 이 더치페이 앞에선 중요치가 않다. 이곳에 있다 보니 '얻어먹는 밥'이 정말 귀한 것임을,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내 음식은 내가, 네 음식은 네가, 함께 먹었다면 나눠 내기가 그들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홍콩은 소유권에 대해 분명한 나라인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이 사람들 왜 이러나' 오해를 하기도 하였다.
지난 해 10월 경, 홍콩에서 한국의 공연 팀이 주관했던 연극이 있었다. '체게바라 평전'을 소재로 한 연극으로 당시 세계를 돌며 순회공연 중이었는데 연극의 60%는 한국어, 40%는 광동어로 구성되어 연극에 초대되었던 교수님의 부탁으로 번역을 돕기 위해 동행하였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입장 할 때 발생하였다. 초대 손님의 동행자이니 당연히 교수님 이름 옆에 내 이름이 기재될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교수님은 초대장 하나로 해결되고 나는 따로 입장권을 구입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타인의 노력을 날로 먹으려 하면 안 돼지!' 라는 생각으로 교수님께 시선을 향했으나 "120달러이니 돈 지불하고 얼른 들어가 자." 라고 말씀하시며 유유히 사라지시는 교수님. "따라란~!!" 솔직히 그 상황에선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내가 잘못된 사고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내 주변에 좋은 분들만 계셨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른과 함께 갈 경우 혹은 상대방의 부탁으로 동행하게 되는 경우 한국에선 보통 상대측에서 해결해 주었기에 이번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더치페이 문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깔끔하고 서로간의 부담이 없기 때문에 더 좋을 수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종종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상황이 아직까지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참 많다.

하루는 친구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친구들과 다함께 집에서 바비큐 파티를 함께 즐기자는 것 이었다. 교환학생의 경우 기숙사는 제공되지만 식사는 개인적으로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 세끼는 무엇으로 해결할 것인가'가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인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학교 식당이 없어 따로 약속을 잡는 것이 아니고는 친구들과 밥 먹기도 힘든데 이런 초대는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한 친구의 집으로 향하였다. 가사도우미 분의 도움으로 재료는 이미 다 마련되었고 우리들의 파티는 시작되었다. 숯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다들 꼬치를 하나씩 뜯으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식사가 길어지는 만큼 우리들의 대화도 길어졌고 오랜 시간 대화를 하다 보니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깊숙한 부분까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깊숙이 담아뒀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간다면 홍콩은 'BBQ 파티'가 그 역할을 하는 듯했다. 그렇게 흥이 난 파티는 늦은 밤이 다 돼서야 끝이 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데 친구가 불렀다.
"재료비가 총 …달러 들었고 1인당 …씩 내면 돼." '어? 이거 분명히 초대라고 했는데..' 사실 집과 숯을 제공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초대받은 사람이 돈을 낸다는 것이 내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먹었으니 돈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다른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오늘 너무 재밌고 고마웠어." 초대자에게 돈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 정말 특이했다. 내게는 낯선 '돈을 받는 초대자'의 모습이 조금 당황스러웠고 그들의 강력한 더치페이 문화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다 며칠 뒤, 내가 바로 그 당황스런 초대자의 위치가 되자 기분이 또 달랐다. 친구들에게 고마운 것이 많아 한국음식도 소개할 겸 겸사겸사 해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김치찌개와 두부김치를 요리해 맛있게 먹고 친구들을 보내는데 며칠 전 바비큐 파티 때와 마찬가지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닌가! 괜찮다고 거절을 해도 준비하느라 요리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라며 재료비는 동일하게 부담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 며칠 전 내가 손님이었을 때는 이런 문화가 낯설고 웃음이 피식 났는데, 초대자가 되어 고스란히 받자 기분이 참 묘했다. 맛있게 먹어준 것도 고마운 데 생각지도 못했던 돈까지 주니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초대 목적이나 상황에 따라 초대자와 참석자의 행동이 또 달라지겠지만 이런 독특한 그들의 문화가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듯 그들은 '내 것과 네 것'. 소유권에 있어 분명하다. 언제나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따뜻한 홍콩 사람들이 돈에 있어서만큼은 이렇게 깐깐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처음엔 '그거 얼마나 한다고 이렇게 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은 딱딱하고 인정이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래. 돈이라는 게 원래 민감한 부분이니 이게 더 낫지 모….'라는 생각이 들며 공평하고 명확한 그들의 문화가 좋다.
<글 : 조현주 (-amicca-@hanmail.net)>
* 필자는 한국 단국대학교 언론홍보학과 4학년으로 2007년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자매학교인 홍콩주해대학교에서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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