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M+ 미술관의 지그 컬렉션에서 인상적이었던 두 작품을 먼저 소개해보고자 한다. 사실 중국 미술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중국 현대 미술에 큰 관심이 없었고, 이렇게 많은 관련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실제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컬렉터’ 덕분에, 그리고 이 시기에 홍콩에 살고 있다는 우연으로 접한 지그 컬렉션은 평소 나에게 가깝지만 먼 나라로, 그리고 뻔하다고 간과하고 있었던 중국에 관한 생각을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또 한편으로는 ‘중국‘ 현대 미술이라는 범주로 묶여 있지만, 그 범주에 큰 관심이 없어도 ‘변화’를 마주한 다양한 에너지와 감정들이 깃들어있는 작품들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1970년대 이후의 중국의 현대 미술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놀랍게도 중국에서도 멀리 떨어진 스위스의 울리 지그(Uli sigg, 1946-)라는 사람으로 법학을 공부한 기업가와 외교관으로서 미술과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중국 현대 미술 컬렉션을 형성하였고, 1997년 중국 현대 미술상을 제정하여 현재까지도 중국의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라운 점은 2012년 그의 중국 현대 미술 컬렉션 중의 ‘일부’인 1,460여 점의 작품을 홍콩 M+ 미술관에 기증하였고, 이 작품들은 M+ 미술관 설립의 근간이 되었다.
사실 미술과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그의 이력은 컬렉팅에 큰 배경이 되었다. 그는 1970-80년대에 스위스의 국제적 기업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배경으로 한 사업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배경으로 1995년부터 스위스의 중국, 북한, 몽골의 외교관으로 임명되었다. 1980년대부터 중국의 변화상을 몸소 겪은 그는 당시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던 무명의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교류하며 30여 년간 작품을 수집하였다. 이 동안의 그의 컬렉션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미술이라는 통로로 이해해 보고자 하는 취지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판단하에 이루어졌다.
M+ 미술관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일정 기간마다 그의 컬렉션 중 일부로 돌아가면서 열리고 있는 울리 지그 컬렉션 전시장으로 들어선다. 수많은 작품 중 두 번째 방 중앙에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작품이 눈길을 끈다. 한 작품은 까만 테두리를 두른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시커먼 석탄처럼 보이는 결정들이 뭉쳐져 있다[그림1]. 그리고 맞은 편에는 진회색의 어린아이만 한 입방체 블록이 나무 받침대 위에 있다[그림2]. 이 작품들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관람자는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이 두 상자를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가까이 다가가 곰곰이 정체를 추측해볼 수도 있으며, 혹은 빠르게 작품의 제목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작품은 허 샹위(He Xiangyu, 1986-)가 2009년부터 ‘콜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그는 고향 랴오닝성 외곽의 노동자들과 함께 6만 병의 코카콜라를 끓여 말라붙은 콜라재를 남겼다. 그는 “온도를 어느 정도 높이면 코카콜라는 천천히 응고되는데, 굳기 전에 거품이 생기고 흰 연기를 뿜어냅니다. 흰 연기가 증발하면 응고되어 여러 가지 색깔의 수정처럼 됩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작품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작품으로 건조된 찻잎을 1입방미터(㎥)로 압축해 만든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달콤하고 중독적인 코카콜라 6만 병을 재료로 한 작품과 중국 전역에서 마셨던 전통차인 보이차의 셀 수 없이 많은 잎을 재료로 한 두 작품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1990년 맥도날드 1호점이 중국에 문을 열었다. 이 시기부터 중국은 전통의 사회주의적인 삶과 현대의 상업화와 물질주의 간의 급속한 충돌과 혼란을 겪었다. 경제는 적극적으로 개방되었지만, 정치는 여전히 폐쇄적이었고, 인플레이션과 빈부격차로 중국의 젊은 예술가들의 문화적 정체성도 변화하였다. 활활 타올라 독성이 있는 물질로 변모한 소비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와 숨 쉴 공간도 없이 짓눌려 본질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자리한 중국의 가장 오래된 수출품은 스위스 컬렉터의 중국 현대 미술 컬렉션 초입에서 서로를 마주한 채 당대에 이들이, 혹은 우리, 모두가 마주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wjyart).
PLACE M+미술관 울리 지그 컬렉션
M+ 미술관 지그 컬렉션은 지난 30여 년간 중국을 대표하는 팡리쥔, 쩡판즈, 위에민준, 주티에하이, 장샤오강, 아이웨이웨이 등의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한 1,510여 점으로 구성되었다. 울리 지그는 2012년에 M+ 미술관에 1,460여 점을 기증하였고, 47점은 미술관에서 구매하였다. 그는 기증 이후 새로운 컬렉션을 형성하여 지난해에는 한국의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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