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락천사>는 전작이었던 <중경삼림>과 비슷한 결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특질을 띠면서 <타락천사>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네 명의 주인공, 그리고 불완전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똑같지만, 두 에피소드가 강하게 분리되어 따로 진행되었던 <중경삼림>과 달리 캐릭터가 서로 느슨한 연결을 유지하며 대화하며 감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지금 관람해도 충분히 세련된 감성으로 영화가 꾸며져 있지만, 뚝뚝 끊기는 서사이다 보니 왕가위 특유의 연출 방식에 익숙지 않다면 취향에 부합하기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황지명과 그의 동업자인 ‘에이전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황지명을 짝사랑하는 에이전트이지만 황지명의 집을 청소하거나 쓰레기를 가져가는 등의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하기보다 묻어 버리곤 한다. 황지명 또한 이를 알면서도 완벽한 사업을 위해 사적인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철저히 피하는데, 이내 살인 청부에 환멸을 느껴 동업을 끝내려 한다. 중간에 마릴린 먼로를 연상케 하는 베이비와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지만 역시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하지무와 찰리의 서사를 담아낸다.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 말을 하지 못하는 하지무는 밤마다 영업을 종료한 가게를 억지로 열어 강매하는 이상한 영업 방식을 가진 캐릭터로, 다른 여자에게 애인을 뺏긴 찰리를 우연히 만나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찰리에게 여러 번 외면당하며 상실을 겪은 후 자유로운 방황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찰리는 승무원이 되어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고 오랜만에 만난 하지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왕가위의 작품 답게 영화 전반에 핸드헬드 기법과 스텝 프린팅 기법이 짙게 깔려 있다. 카메라는 불규칙적으로 어지러이 움직이며 배우를 비춘다. 의도적으로 프레임 수를 낮추어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부자연스럽고 뚝뚝 끊기게 만든다. 먼지가 낀 듯 화면은 전체적으로 탁하고 뿌옇고, 광각 렌즈를 사용해 과하게 배우를 줌인하기도 한다. 초록색과 붉은색의 조명을 번갈아 사용하거나 혼재시켜 비춤으로써 몽환적이면서도 매혹적인 홍콩 특유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이러한 왕가위 스타일의 기법들은 작품 속 세계를 관객이 있는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한 느낌을 주는 데에는 음악도 한몫 하는데, 복잡함 없이 일정하고 반복된 선율을 작품 중간중간에 늘어 두어 관객이 작품을 좀 더 환상적으로 대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끝까지 그러한 조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고, 끝에 이르러서는 각자 원했던 사랑의 결말을 얻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절망하며 현실로 복귀한다. 에이전트와 베이비는 황지명을 사랑했고, 하지무는 찰리를 사랑했지만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사랑을 매듭짓지 못한다. 영화는 접점이 없던 하지무와 에이전트가 우연한 기회로 만나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내 새벽인지 낮인지 모를, 밝음이 도사리는 곳으로 멀리 사라진다. <타락천사>가 비추는 홍콩은 주로 어둡고 네온사인만이 이리저리 거리를 비추는 밤 혹은 저녁이지만 하지무와 에이전트만이 빛나는 아침으로 간다. 결국 불완전한 사랑에서 탈출해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은 하지무와 에이전트만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타락천사>는 결핍된 자들의 어두운 이야기이며 좀 더 날 것의 <중경삼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중겸삼림> 보다 덜 정돈되어 있고, 훨씬 더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솔직함을 조금 보태 보자면 왕가위 영화를 보면서 모든 미장센과 연출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 왕가위 또한 자신이 쌓아놓은 것들을 관객이 모두 이해하고 주워담으리라고 생각하며 만들진 않았을 테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관객이 열과 성을 다해 모든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론 그저 카메라에 담긴 누군가의 이야기를 제3자로서 조용히 관음하고 캐릭터가 느낄 감정을 가늠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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