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현실을 마주한다. 현실 속에서, 혹은 영화 속에서 어떠한 모습의 시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가? 현실 속에서는 남성, 영화 속에서는 여성이 더 살해당한다. 2016~2020년 경찰청의 ‘신체 피해 상황’ 통계를 보면 살인·폭행 등 강력·폭력 범죄로 숨진 피해자는 총 3,142명이다. 이 가운데 남성(1,701명)이 여성(1,441명)보다 1.18배 더 많다. 2019년 사망자는 남성 310명, 여성 320명으로 비슷했고, 2020년에는 남성 369명, 여성 285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공포 장르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제한적이다. 죽었거나, 앞으로 죽거나. 그러나 아시아 영화와 서양의 공포 영화의 특징은 사뭇 다른데, 아시아 영화에서 귀신 혹은 악귀는 여성으로 등장하는 비율이 크다. 이는 공포 영화에서, 어떠한 공포를, 어떠한 매개체를 선택하느냐에 달라지는데 최근 20년간 흥행했던 영화들을 둘러본다면 단언컨대 여성 귀신의 수가 더 많다. 수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많은 시리즈물을 배출한 “여고괴담” 시리즈나, “링“, “랑종“ 등 많은 아시아발 공포 영화들은 여성의 괴물화(monstrous women), 즉 무서운 여자에 대한 서사를 담고 있다.
”하녀“의 감독인 김기영은, 1919년 태어나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서 초기 한국 공포 영화의 시초라고 부를 수 있다. 또한 그는 드물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다수 제작하였으며, 전쟁을 거쳐 1960년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서막을 열었다. 하지만 독재정치의 시작으로 시작된 창작의 제한으로 인하여 1980년대 부근에는 영화 제작을 멈추었다. 영화 ‘하녀‘ 속 스토리는 단순하다. 단 한 명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며,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그 관계는 ‘권력 쟁취’가 중심이 되며, ‘권력’의 중심에는 남성 등장인물이 존재한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등장하는 여성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갖고 있는 성욕을 분출하며, 그를 최대한 사로잡으려고 노력한다. 여성 등장인물들은 ‘무서운 여자’ 즉, monstrous women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여성의 욕망 추구는 터부시되었기에 영화와 현실의 차이는 극명하게 느껴졌다.
한국 사회에서는 현재도, 여성의 결혼은 ‘신분 상승’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여겨진다. 예비 남편의 직업부터, 시댁의 재산, 시부모의 학력까지도 여성의 결혼 조건에 해당되기도 한다. 영화 속 배경은 1960년대이기는 하나, 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속 권력관계를 나타내주는 장치가 여러 개 등장하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장치는 ‘계단’이다. 남자 주인공은 공장 사장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고용하고 공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가정을 꾸려가는데, 남자 주인공의 집에는 계단이 있다. 부동산의 가격이 폭등하고, 서울로 상경하는 이주민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산업화 서울의 모습에서는 계단이 있는 ‘양옥집’은 부의 상징이었다. 남자 주인공의 부인은 계단 위에서, 남자 주인공이 고용한 ‘하녀’는 계단 밑에서 서 있으며, 프레임 속 계단은 두 여성의 계급관계를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계단 뿐만 아니라, 쥐의 존재도 영화 속 계급관계를 확실하게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침입생물로, 하녀를 의미한다. 또한 결혼한 여성은 ‘외부인’이 되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쥐는 지저분하고 속도가 빠르게 돌아다니는 생물로, 그 당시 집안은 물론 도시를 더럽히며 재산을 부식시키는 존재였다. ‘외부인’인 쥐를 영화 속에 등장시킴으로서 감독은 하층 여성과 쥐를 연관시키며 쥐와 같은 하층 여성이, 부유한 남자 주인공을 타락시키고 가정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부여한다. 남자 주인공의 본처는, 외부에서 들어온 생물이 자신의 소유물을 타락시키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소유물은 남자 주인공과 양옥집, 아이들로 지정된다. 반면 생존력이 강한 동물로 불리는 쥐는 가정의 파괴와 침입자에 대한 공포를 구성하는 존재가 되며 성욕에 충실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녀는 남자 주인공 사이에서 아이를 만들며, 그 아이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즉 가정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본처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아이를 강제 유산 당하고, 목표를 상실하게 된다. 목표를 상실한 하녀는 괴물이 되고, 그 괴물은 복수를 위해 존재하는 귀신의 존재로서 남는다. 이러한 영화 속 재현은 비이성적인 성욕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하녀가, 인간에서 무서운 여성 즉 귀신이 되는 조건은 ‘욕망 추구’이다. 욕망과 힘을 추구하는 여성은 언젠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 속 터부시되는 여성의 욕망 추구와 동일한 위치에 있고 동일하게 해석된다. 보기 드문 여성 주인공들이 다수 등장하는 영화라고 정의할 수 있으나, 여성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실제로 ‘기가 센’ 여성이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존재하는 사회적 서사로도 꼽힌다. 신분 상승과 성욕, 재산에 대한 욕심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여성에게만은 해당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라고 하는 범주에, 절반인 여성을 범주에서 배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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