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시아 출신 남성들이 홍콩에서 결혼을 미끼로 한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고 있지만, 문화적 금기에 발목이 잡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
남아시아 출신 남성들이 홍콩에서 결혼을 미끼로 한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고 있지만, 문화적 금기에 발목이 잡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1일 홍콩 현지의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및 변호사들의 말을 인용, 인도·파키스탄 등 남아시아의 취약층 남성들이 유복한 집안 여성과의 중매결혼이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홍콩으로 건너오지만 실제로는 노예처럼 부림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들 남성은 홍콩에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고향의 가족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본국을 떠나오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아내의 가족들에게 여권을 빼앗긴 채 감시당하며 밤낮으로 강요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파키스탄 펀자브 주의 빈곤한 농가에서 자란 샤히드 산드후(34)는 홍콩 출생의 부유한 파키스탄 여성과 결혼시켜주겠다며 접근한 중매쟁이의 말을 듣고 4년 전 파키스탄을 떠나 홍콩으로 왔다. 그러나 그의 아내 및 그 부모·형제들은 그의 여권을 빼앗은 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일주일 내내 그를 건설현장에서 혹사시켰다. 혹시라도 힘든 기색을 보이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신체·언어적 폭력이 가해졌다. 그는 모든 돈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그러나 가문의 명예·체면 등을 중시하는 뿌리깊은 수치의 문화와 고립감·응징에 대한 두려움이 이들을 ‘침묵하는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이들은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그늘 속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심각한 우울증과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산드후 역시 가해자들의 행동이 명백히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치심과 보복·추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경찰서에 가는 것을 꺼리는 상황이다.
결혼을 미끼로 인신매매를 당한 남아시아 출신 남성들을 100여 명 만나온 이민컨설턴트인 리처드 아지즈 버트는 “이들 남성은 가부장적인 국가 출신으로, 만일 그들이 노예처럼 대우받았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면 사람들은 그들을 비웃으면서 쓸모 없고 나태한 겁쟁이라고 조롱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에게도 문제를 털어놓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카람짓 싱(28)도 홍콩 출생의 인도 여성을 소개 받아 홍콩으로 왔다. ‘적합한’ 신랑을 찾기 위해 직접 인도를 찾아온 아내의 가족은 싱과 싱의 홀아버지를 극진히 대접했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그는 ‘선진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에 대한 기대로 결혼에 승낙했다. 그러나 홍콩에서 그는 낮에는 건설현장 노동자로, 밤에는 경비원으로 일해야 했다. 장인과 처남은 그의 월급을 모두 통제했고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개월 전 버트를 찾아왔지만 경찰서에는 가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버트에 따르면, 이들의 비자는 세간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주로 컨설턴트나 변호사 없이 아내의 가족이 직접 발급 절차를 밟고 있다. 피해 남성들은 대부분은 파키스탄·인도 출신이지만 방글라데시·네팔 등 다른 남아시아 국가 출신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탈출을 시도하더라도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해 홍콩을 즉각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파키스탄에서 온 카쉬(36)는 홍콩에서 지난 5년 동안 아내의 가족에게 여권을 빼앗긴 채 감시 당하며 강요된 노동을 해오다가 처남으로부터 칼 공격을 받고 탈출을 감행했다. 그는 “그들은 나를 노예처럼 대했고, 내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대했다”면서 “나는 피를 흘렸지만 그들은 사소한 일일 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손에 죽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맨몸으로 탈출한 카쉬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연락할 사람이나 돈도 없어 거리에서 방황했다. 버트는 카쉬의 상황을 이민국에 보고하고 그가 아내 없이도 홍콩에 체류할 수 있도록 비자 기간을 연장하려 했지만, 더 이상 배우자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수일 내로 홍콩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수치심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카쉬 같은 많은 피해자들은 주로 홍콩에 불법체류 상태로 남아 유령처럼 도시를 떠돌거나 건설현장·식당·배달 부문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는 전세계적으로 가족 및 결혼제도 내에서 발생하는 인신매매·노예 문제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있다면서, 홍콩 이민국도 원정결혼을 온 사람들에 대한 착취 실태 등과 관련된 공식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원 활동가들은 “홍콩에 포괄적인 인신매매 방지법이 있었다면 이러한 피해자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제도적 정비 및 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홍콩의 심리학자인 토니 디킨슨은 “남성들이 처한 곤경이 곧 연약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방치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끔찍하게 생각하고 믿기 어려워 하겠지만 이들을 위한 법적 보호 장치는 마련돼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출처 :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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