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이럭 클럽"을 기억하시는지…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비슷하게 생긴 동양사람들이지만 중국 사람은 정말 본질적으로 무엇인가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중국인들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중국 식당에 모여 둥근 테이블(중국 사람들은 네모난 테이블 싫어한다)위에 한 겹 더 올려진 "레이지 수잔(lazy susan)"을 빙빙 돌려가면서 천천히 음식을 즐기는데, 그 장면처럼 지금은 내가 테이블을 빙빙 돌리고 있을 줄은 누가 알았으랴.
홍콩인들은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가족끼리 모여 얌차(점심)를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은 번갈아 가며 친정 식구들이나 시집 식구들과 저녁을 먹는다.
홍콩남자와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으례히 나오는 얘기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시댁 가족들과 시시때때로 빙 둘러 앉아 기름기 좔좔 흐르는 식탁을 앞에 두고 자기들만이 알아듣는 광동어로 레스토랑 천장이 들썩거릴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데, 그런 자리에 끼어 벙어리처럼 멍하니 앉아 있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고 나를 배려한답시고 가족들이 애써 불편한 영어로 얘기하는 것도 그리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가끔 한국에서 시부모를 모시다 온 친구들을 만나 이런 푸념을 늘어놓으면 그들은 대뜸 배부른 소리 그만 좀 하라며 있는대로 타박을 해댄다.
하기야 그렇다. 며느리에게 바리바리 음식을 한 상 차려내라고 주문을 하나, 싱크대에 차고 넘치는 그릇들을 닦느라 허리가 휘어지길 하나, 시댁 식구들 눈치를 보기를 하나.
그래서 나는 귀머거리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레이지 수잔을 빙빙 돌려가며 음식을 나누고 하는 일에, 홍콩생활 10년이 가깝도록 살아도 늘 새로운 음식이 나오는 가족과의 저녁테이블에서 낙을 찾으며 위안을 삼는다.
어차피 홍콩에서 홍콩 남자의 아내로 살려면 이 문화에 반감보다는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고, 그래야 내 남편도 나를 본받아 한국 문화를 존중해 주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에 나는 기껏해야 1년에 추석, 설날, 제사 때 가족끼리 모이는 우리 한국의 방식에 젖어 1주일에 최소 2번씩 시댁식구들을 만나야 하는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을 늘어 놓았더랬다. 다행히 지금은 남편과 시댁 식구들과 잘 타협해 아이들만 시댁에 보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첫 번째 나의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젊은 나이에 이혼한 후 각자 자신들의 사랑을 찾아 재가하신 시부모님들의 유별난 손자 사랑에 장독같이 무거운 아들 둘을 들쳐 업고 이혼한 시어머니 집, 이혼한 시아버지 집을 번갈아 이집 저집 불려 다니는 진풍경을 연출해야 했다. 우리나라식이라면 이혼하여 재가한 시어머니의 경우는 아들, 손주, 며느리에게 감놔라 대추놔라 하지 않고 그쪽 가족에게만 전력을 다하며 사는데, 어찌된 게 홍콩은 시아버지와 재혼한 시어머니 보다 재가해 나간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손주들에 관한 한 더 많은 권력행사를 하고, 참견을 하신다.
이런저런 일로 주중에는 도저히 시간이 안 나 한가한 주말에 홍콩 사람들이나 홍콩인과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면 "일요일 점심은 친정식구들과 …." 아님 "토요일 저녁은 시집…." 이런 답변을 듣기가 일쑤다. 그래서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려고 해도 일찌감치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홍콩식 외식 문화가 외국인들에게는 의아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홍콩식 가족문화를 따르려면 외식비로 나가는 돈도 장난이 아니다. 매 주말마다 온 가족이 우루루 몰려나가 외식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친정 부모님은 홍콩에 오실 때 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금을 척척 지불하는 시부모님을 볼 때마다, 그들이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며 더 특별히 진수성찬을 한 테이블 그득 쌓아올린 올릴 때마다 좌불안석이 되고만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밥을 한 끼 같이 먹으면 없던 정도 생기기 마련인데 하물며 가족끼리 자주 만나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홍콩 사람들의 가족애는 저절로 깊어지고 끈끈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홍콩의 딸들은 결혼 전이나 후나 친정부모에 '너무' 잘 한다. 기가 센 홍콩 여자들 앞에 꼼짝 못하는 사위들이 덩달아 친정 부모에 더 잘하는 걸 보면서 딸 하나 없는 나는 장차 서러워서 어찌 사나 싶은 마음까지 든다.
결혼하여 분가한 한국의 가족들에게 매주 부모님을 뵈러가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부모님 모시기를 꺼려 해외에 버리고 오고, 장성한 아들 딸들이 있음에도 차가운 지하 단칸방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은 후 몇 주일이 지난 후에야 발견 됐다는 뉴스를 접하며 우리는 많이 반성해야함을 느낀다. 만약 우리도 이들처럼 부모님과 자식들 간에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해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홍콩에서 아들, 손자, 며느리 모두 한 자리에서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 나는 한국에 계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올 여름에는 한국에 들어가서 딸 노릇 제대로 한 번 해보련다.
어무이 아부이여 쬐매만 지둘려 주이소마, 내 퍼뜩 갈끼다.
<제니퍼 김(hongkong5j@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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